시스템 안전과 전통적인 안전
이재명정부에서 산업재해를 주제로 한 국무회의 생방송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산업안전에 관심이 고조됐다. 장기적으로는 크게 기대되지만 전부처의 대책·대응에도 불구하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부의 입장 표명으로 일순간에 크게 변화되긴 쉽지 않다. 사회의 부담보다 이익이 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안전에 대해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안전’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규제, 관리, 작업 안전이라는 개념은 산업혁명(18세기 중반~19세기) 이후 엄청난 산재문제를 계기로 확립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 광산 철도 등에서 대규모 기계설비와 새로운 화학물질이 사용됐다. 하지만 현대와 비교 불가한 낮은 수준의 기계설비와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유해가스, 노동자들 집단생활로 인한 질병 감염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맞물려 산재가 심각했다.
안전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아닌 자본가들의 걱정에서 출발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산재를 자신들의 운명으로 생각했으나 자본가들이 공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자신들의 건강과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차질을 염려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개인의 노력을 넘어선 사고방지 또 이를 위한 사회적 조치의 필요성에서 안전에 관한 법과 규제가 탄생했다. 1802년 영국에서 최초의 공장법이 제정됐고 노동환경 규제(환기 청소)의 기초가 됐다. 이는 안전기준 준수가 사고를 줄일 것이라는 인식이 처음 반영됐다.
1837년 무렵 법적 판례를 통해 사고에 대한 고용주 책임 개념이 도입되면서 안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과 관리의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법률 이름에 세계 최초로 안전이 들어간 철도안전법은 1893년에 미국에서 제정됐다. 20세기 초, 미국 US스틸에서 ‘안전제일’을 사훈으로 내걸면서 생산성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경영철학이 시작됐다. 1931년 당시 보험전문가였던 하인리히가 보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술한 ‘산업 사고예방: 과학적 접근’은 현재 대한민국 산업안전의 주류가 될 만큼 산재예방을 위한 전세계적인 나침반이 됐다.
한국에서 산업안전은 탄광 붕괴사고 등으로 간혹 사회적 관심을 받았으나 본격적인 관심은 비록 당시 노동운동 확산을 달래려는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이다. 당시 산업재해보상보험 의무 대상은 5인 이상 사업장이었고 산재통계가 국가통계로 편입되기 전이어서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23년 국가통계인 사고사망만인율 0.39 대비 20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물론 현재 법규가 무용지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개인 뿐만 아니라 기업의 안전에도 해당된다. 현재 우리의 산업안전은 하인리히, 즉 생산활동 외의 안전활동에서 위험을 찾아 개선하는 것이 주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는 양극화로 인해 그것이 유효한 영역과 효용성 한계에 도달한 영역이 공존한다.
시스템 안전은 전통적인 안전 개념이 대규모의 복잡한 산업현장에서의 한계 인식에서 시작된 학문 분야이자 공학적 접근 방식이다. 1950~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국방부와 NASA의 고도로 복잡하고 위험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관리하기 위해 내용적인 시스템 안전 개념은 탄생했다.
이후 TMI 원전사고를 심층 연구한 1984년 찰스 페로의 정상사고, 즉 현대 산업의 복잡성과 결합성으로 인해 사고는 필연적이고 시스템 스스로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는 관점은 시스템적 접근을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산업현장 역시 기존의 안전 개념, 즉 “안전 수칙과 점검으로 개별 부품이 이상을 제거하고 노동자가 실수를 방지하면 안전하다”는 전통적인 개념으로는 낮아진 발생 확률의 대규모 생산현장 사고나 어이없는 사고를 더 이상 예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미 들어서 있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