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안전 이상안전
안전은 정상운영 역량, ‘안전탄력성·리더십’에 초점을
한국시스템안전학회, ‘시스템 안전과 안전리더십’ 학술대회 … “기업 안전문화 구축 핵심, CEO부터 시작”
한국시스템안전학회(KSSS)가 13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환자안전 항공안전 산업안전 원자력안전 등 여러 산업분야의 산업계 학계 연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7차 학술대회를 열었다. ‘시스템 안전과 안전리더십’이란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법무법인 화우와 내일신문 공동주최, 안전보건공단 후원, KSSS 주관으로 열렸다.
권보헌 KSSS 학회장은 개회사에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안전은 더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현실은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면서 “추석을 앞두고 발생했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처럼 사고의 뒷수습에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이 빨려 들어가는 ‘싱크홀’ 같은 상황을 우리는 아직도 마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사고의 부재’를 안전으로 보는 과거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더 많은 정상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역량’, 즉 안전탄력성(Resilience)과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번 학술대회가 ‘사고를 줄이는 방법’을 넘어 ‘성공을 재현하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KSSS는 제조 의료 항공 해양 원자력 건설 교통 정보통신(IT) 등 사회 각 분야의 안전을 국제적 수준의 시스템 안전공학의 방법론을 적용해 개선하고 원천적으로 시스템의 안전탄력성을 높임으로써 선진 안전을 현장에 정착시키려는 연구자와 실무자들의 학술단체다. 2016년 레질리언스 안전연구회를 시작으로 2019년 7월 2일 창립했다.
윤완철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실용적인 간이 FRAM(기능적 동조 분석 방법) 사용법’ 강의에서 “안전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지속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전통적인 안전(안전-Ⅰ)에서는 ‘잘못되는 일이 적은 상태’, 즉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사고나 사건의 발생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반면 현재 안전-Ⅱ 개념은 ‘잘되는 일이 가능한 상태’, 즉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기대한대로 작동하는 긍정적인 상태에 초점을 둔다. 이는 단순히 위험을 제거하는 데서 나아가 시스템의 능동적 안정성과 탄력성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윤 교수는 “위험과 사고를 개별 요소가 아닌 상호 연결된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 분석해 시스템이 선제적으로 위험을 예측·제거하고 대응하는 통합적 접근이 중요해졌다”며 “이는 복잡해진 현대산업과 사회구조에 맞춘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과 사고는 같은 시스템의 다른 결과이며 안전능력이란 바로 정상 생산능력”이라며 “안전-Ⅰ이 ‘지키는 안전’이라면 안전-Ⅱ는 ‘하는 안전’으로서 생산을 안전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 사용이 어려웠던 FRAM을 실용화한 버전으로 FRAM-S를 제시하면서 DFD(데이터 흐름도, Data Flow Diagram)와 접목시켜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FRAM(Functional Resonance Analysis Method)은 인간 조직 기술 정보 자원 등 다양한 시스템 내 기능 간의 비선형적 상호작용(공명과 네트워크 영향관계)을 분석하는 3세대 사고분석 기법이다.
윤 교수는 “안전전문가는 정상적인 생산과정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사고분석이나 위험성평가도 정상적 활동을 표현하는 시스템 안전모형인 FRAM을 기반으로 안전-Ⅱ의 관점을 살려 평가-분석-검토 과정을 거쳐 정상 생산에서 안전이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Ⅱ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생산=안전’이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FRAM과 같은 ‘정상활동’의 모형론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함 또는 문제점 위주의 모델을 사용한 안전-Ⅰ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한다. FRAM을 활용해 사고분석이나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면 안전-Ⅱ적인 안전관리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FRAM 모형 사용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작성이 이론적으로 어렵고 시각적으로 복잡해 읽어는 내는 것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FARM 원리를 보존하면서도 쉽게 작성하고 넓게 활용할 수 있는 FRAM-S를 소개하고 활용사례를 공유했다.
첫째날 기조강연에서 이상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보건의료정책기획단장은 ‘환자안전, 안전-Ⅰ과 안전-Ⅱ 동행’이란 주제로 1990년대말 미국 의료계의 성찰 보고서 ‘To Err is Human’(누구나 실수를 한다) 발간과 2010년 국내 환자안전법 발의 이후 지속된 시스템적 환자안전 활동을 소개했다.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는 ‘영국 환자안전 정책 동향 및 실제사례’ 기조강연에서 영국 의료사고조사 프레임 업그레이드 및 환자안전전문가 육성 사례를 발표했다. 두차례 기조강연은 항공·원자력·산업 안전과 함께 KSSS가 추구하는 환자안전을 보다 주목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제발표에서는 권영국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가 ‘20년간의 안전리더십 변화와 특성’ 발표에서 “안전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려면 기업은 강력한 안전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는 최고 경영진(CEO)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전이 CEO의 주요 역할은 아닐 수 있지만 회사의 CEO는 가장 중요한 안전책임자”라며 ”CEO 안전 리더십이 안전에 대한 최신의 가장 관련성 높은 관점을 수용하도록 돕고 이를 통해 강력한 안전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학과 교수가 국내 항공분야 사례를 통해 항공사의 성과에 미친 안전 리더십을, 정수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규제정책실장이 원자력 안전 리더십 요건과 국제 동향을 소개했다.
이어진 토의는 윤완철 교수를 좌장으로 김창우 극동대 교수, 양정모 박사(SK이노베이션 E&S), 정수진 실장이 토론자로 참여해 사업장의 규모 차이에 따른 리더십의 중점이나 발현 방식이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모든 계층에서의 리더십 발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고 책임자는 물론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재조명됐다.
둘째날 학술논문 세션에서는 사업장 안전, 군 조직의 탄력적 안전관리 리더십, 도시가스 지하매설배관, 근로자 안전보건교육, 시스템 안전분석 지원 소프트웨어 품질평가, 서부발전 및 중부발전의 발전산업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추진사례, 원자력 규제기관 안전문화 관리 및 증진 체계와 항공안전 안전탄력성 역량 강화 등이 발표됐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