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투명한 외부감사는 신뢰의 출발점

2025-11-24 13:00:01 게재

“지수는 올랐는데 내 주식은 오르지 않았다.” 최근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넘어섰다. 반도체 조선 방산 등 일부 업종의 실적 개선 기대감과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반영된 결과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자사주 소각 제도 강화, 주주 충실의무 도입 등 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시장의 기대를 끌어올린 것이다. 그러나 지수 상승의 상당 부분이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집중되면서 개인투자자의 체감은 숫자와 다르다.

정부정책이 기업의 밸류업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투자자가 기업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기업이 공시하는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의 신뢰성이 전제돼야 한다.

기업 공시의 신뢰성은 투명한 외부감사에서 비롯된다. 외부감사는 투자자와 피투자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을 줄이고, 기업의 재무정보에 대한 인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회계업계는 지정감사 축소, 저가 수임경쟁 심화, 감사 투입시간 축소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회계법인, 생존을 위한 가격경쟁

지난 10월 개최된 회계의 날 기념식에서 금융위원장은 “지나친 저가 수임경쟁은 감사 투입인력과 투입시간 감소로 이어져 감사품질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이 감사품질이 낮아 회계투명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는 감사인이나 회사에 대해 심사 감리 제재 등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상대적으로 감사보수가 높은 지정감사 대상회사 수가 줄면서 회계업계의 실적이 악화했고, 회계법인은 생존을 위한 가격경쟁을 시도하게 됐다. 감사보수가 낮아지면 감사시간이 줄어들고, 감사시간이 줄어들면 감사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부감사가 흔들리면 자본시장의 신뢰가 하락하고 이는 결국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진다.

신뢰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불안요소는 시장 자체의 정화기능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의 절반 이상이 시장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신규 기업의 자본시장 진입을 통한 혁신과 투자의 제약이 발생하며,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저하된다고 분석하고, 만약 한계기업이 정상기업으로 대체되었다면 GDP가 0.4~0.5% 증가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계기업의 문제는 단순히 지수나 생산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수 년간 영업적자를 기록하거나 과도한 차입으로 부실위험이 높을수록 지배구조가 취약해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고, 주가조작에 악용되는 사례가 반복됐다. 실적과 무관하게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하면 뒤늦게 따라 투자했다가 조작이 드러나면 회복할 방법이 없어 투자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투자손실이 아니라 노후자금과 생계자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문제다. 결국 한계기업의 방치는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구조적인 위험이자 개인투자자에게는 가장 취약한 위험이다.

주식의 안녕, 시장 신뢰 회복부터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은 중요한 기반이 되지만, 정책만으로 장기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외부감사의 독립성과 품질, 기업공시의 투명성, 한계기업의 적시퇴출과 새로운 혁신기업의 시장진입이 함께 이루어져야 기업의 밸류업은 개인투자자에게 현실이 된다. 신뢰 없는 시장에서 당신의 주식은 안녕할 수 없다.

이원호 다산회계법인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