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보험 변호사비용 놓고 신경전
과잉청구 논란에 당국-업계 간담회
#A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치어 전치 2주 부상을 입혔다. 그는는 피해자에게 150만원의 형사합의금을 지급한 뒤 또 변호사를 선임하며 보험사에 법률지원비용 5000만원을 요구했다. ㄱ보험사는 경미한 사고임에도 거액의 법률지원비용을 요구받자 보험사기로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재 이 사건은 수사중이다.
#ㄴ보험사 운전자보험에 가입한 B씨는 중대법규 위반 교통사고를 냈다. 피해자는 전치 10주의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B씨는 운전자보험의 교통사고처리지원금 8000만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키로 하고 합의했다.B씨는 법원으로부터 약식명령을 받아 벌금 300만원을 부과 받았다. 약식기소가 되면 대부분 약식재판에서 벌금형이 선고된다. 법조계에서는 수임료 500만원 안팎이면 변호사의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B씨는 돌연 약식재판이 아닌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변호사에게 법률지원비용 3000만원을 지급해주라고 보험사에 요청했다. 보험사는 이를 거부하고 변호사 비용 500만원만 지급했다. B씨는 이에 반발해 보험사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운전자보험이 운전자들 사이에 필수로 꼽히고 있다. 다양한 보장을 하지만 법률지원비용 특약을 놓고 보험사-계약자-변호사간 신경전이 끊이지 않는다.
24일 보험업계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운전자 법률지원비용 지급을 놓고 민원이 이어지자 최근 금융감독원이 손해보험사의 운전자보험 담당자들을 모아 간담회를 가졌다. 금융당국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운전자보험 개선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보험은 차량소유주가 가입해 사고가 발생하면 민사상 손해를 주로 보장한다. 반면 운전자보험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사고시 형사처벌을 줄일 수 있도록 상품이 구성돼 있다.
자동차보험 보완재로 자리잡다보니 매년 1000건 안팎의 신규 가입이 이뤄진다. 최근 5년6개월간(2020년 1월~2025년 6월) 반기별 신규 계약자를 살펴보니 평균 480만명, 매년 960만명씩 신규 가입하고 있다. 운전자보험은 매년 새로운 특약이 나오면서 종전 계약을 깨고 새로운 상품으로 갈아타는 승환도 자유로운 편이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예민한 것은 사고시 변호사비용을 보장하는 법률지원비용때문이다. 보험 상품과 특약 구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000만~1억원에 달한다. 주로 큰 사고를 낸 계약자가 수사와 재판을 받을 때 필요한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률지원비용을 보험사가 지급하는 구조다.
보험사는 1·2·3심 변호사선임비용을 계산해서 특약 보장을 설계했는데, 간단한 사고 1심 재판에 보장한도를 모두 달라고 요구하는 게 빈번하다. 보험사가 이를 거부하면 금감원에 민원이 제기되는데 보험금을 지급해달라는 송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보험사 심사 담당자는 “법률비용청구는 터무니없는 경우가 상당해 심사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지급이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전반적으로 시장 정상화를 위해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 로펌에서 교통사고를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이미 법조계에서 운전자보험 법률지원비용 과잉 청구는 오래된 일”이라면서 “일부에서는 의뢰인(가해자)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등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는 거래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교통사고 전담 변호사는 “법률지원비용은 구체적 단가가 없이 의뢰인과 변호인간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대형 로펌이 수천만원을 청구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개인변호사는 문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법률시장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을 의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서는 보험사가 지급한 법률지원비용 일부가 계약자에게 리베이트 형식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합의금이 부족한 경우 가해자가 변호사에게 사정해 법률지원비용을 더 받아 이를 합의금으로 돌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에서 보험계약자와 전문가인 의료인, 브로커가 손잡고 비급여 과잉치료를 받는 것처럼 운전자보험 법률지원비용 부분도 매우 유사하다”며 “다행히 보험업계와 금융당국, 법조계, 보험소비자들이 초기에 이를 인식해 바로 잡는데 의견이 일치해, 조만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