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희 변호사의 이혼소송 이야기 (3)

의뢰인의 삐에로 웃음, 가정폭력

2025-11-24 13:00:35 게재

이혼소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파탄 사유는 부정행위와 가정폭력이다. 대부분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여성만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남성 피해자 역시 적지 않다. 오히려 ‘남자가 맞고 산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더 오래 참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은 112 신고 내역을 통해 일정 부분 증거로 제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결과가 ‘쌍방 폭행’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단순히 방어만 한 피해자에게도 가해의 낙인이 함께 찍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로 활용하기 어렵고, 오히려 분쟁을 더 복잡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렇다면 실무에서 가장 효과적인 증거는 무엇일까. 나는 의뢰인에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 바로 (1) 녹음과 (2) 홈캠 기록이다. 하지만 폭력을 당하는 순간, 휴대폰 앱을 켜 녹음을 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손을 뻗는 동작 자체가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적인 폭력이 예상되는 사건일수록 의뢰인에게 (1) 스마트워치 등 ‘손목 녹음 장치’를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기록이 가능하기에 실무적으로 매우 유용하다.

얼마 전, 오랜 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녹취록을 들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해당 녹취록에는 배우자가 목을 조르며 고함치는 소리, 의뢰인의 숨이 막히는 음성, 떨리는 호흡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의뢰인은 어느 순간에도 반항하지 못했고, 상황은 이미 일상처럼 굳어져 있었다. 나는 녹취록을 읽으면서도 손끝이 저릿해질 정도로 현장의 공포가 생생히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의뢰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변호사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말이 오히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폭력이 반복되면 그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일상’이 된다. 맞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게 되고, 아파도 웃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야말로 ‘삐에로의 웃음’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 뒤에는 응어리진 고통이 짙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남성 피해자는 더 말하기 어렵다.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게다가 신체적 장애나 질병이 있는 남성은 오히려 여자 배우자의 폭행에 더 취약한 구조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들은 이미 관계의 위계가 여성 배우자에게 넘어간 구조 속에서 정서적으로도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변에는 “남자가 그 정도도 못 버티냐”라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폭력의 고리를 더욱 오래 끌고 간다.

이혼전문변호사로서 다양한 가정폭력 사건을 대리하였고, 그 폭력의 양상은 결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 확인한다. 피해자의 고통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더 이상 침묵 속에 머물지 않도록 돕는 일, 그리고 폭력의 반복을 기록과 증거로 끊어내는 일이다.

가정폭력은 어느 가정에서도 “흔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부부관계는 힘의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이기에 서로의 존엄을 지켜줘야 한다.

폭력이 스며든 일상은 결코 정상일 수 없다. 웃어도 거짓 웃음뿐이다. 그 거짓 웃음이 멈추는 그 순간, 비로소 그 사람의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노주희

법무법인 새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