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한국판 로벤스위원회, 실천만 남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부처가 나서 대책 마련에 부산을 떨었지만 산재 사고사망자수는 오히려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25일 발표한 올 3분기(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4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43명)보다 14명 증가했다.
특히 건설업이 전체 사고사망자의 45.9%를 차지했다. 사고사망자도 전년 동기대비 7명 증가했다. 특히 공사기간이 짧고 안전수준이 열악한 5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91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산재지표는 윤석열정부의 ‘건폭몰이’ 정책의 후행지표일 수 있다. 하지만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재명정부에서 그렇게 핑계를 대는 것은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산업혁명 이후 안전에 대한 첫 번째 법과 규제는 1802년 영국의 공장법이다. 이후 1837년 법적 판례를 통해 사고에 대한 고용주 책임 개념이 도입되면서 안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과 관리의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산재에 대해 노동자들에게도 책임이 물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25일 발표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서도 기업 10곳 중 4곳이 ‘근로자 안전보건 책임 확대’를 꼽았을 정도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산재 사망사고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사고자 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의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등한시 됐던 산업안전 문화가 세계 10위권 경제규모가 된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산업현장은 아직 공장법 시대, 1931년 하인리히식 드러난 위험제거와 안전인식에 머물러 있다. 안전보건 규제도 대규모, 고도화, 복잡해진 산업현장과 인공지능 등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전근대적이다.
최근 차관급인 노동부 초대 산업안전본부장에 이례적으로 안전시민단체인 일환경건강센터 류현철 이사장이 임명됐다. 그는 임명 직전 국회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체계가 1960년대 영국과 유사한 한계에 직면해 있다”며 “1970년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개혁한 ‘로벤스위원회’를 한국식으로 가동해야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로벤스위원회 출범 후 산업재해 사망률을 90% 낮춘 바 있다. 이제 실천만 남았다.
게다가 26년 만에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두 위원장은 한목소리로 “중층적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다. ‘한국판 로벤스위원회’의 마중물로 경사노위에서 전체 산재 사고사망자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 사고사망 줄이기’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