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국 단기채 위주 발행의 후과
10월 초순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은 보기 드문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를 누렸다. 금·주식·비트코인까지 주요 자산이 동반상승하며 시장에는 낙관이 퍼졌다. 그러나 10월 중순 비트코인 급락을 시작으로 금값과 주가가 모두 하락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여러 자산이 동시에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유동성이다.
이번 조정의 출발점 역시 미국 단기자금시장에서 나타난 ‘발작적 금리 급등’이었다. 이는 지난 7월부터 우려됐던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단기채 위주 발행 전략이 만들어낸 후과다.<8월 31일자 내일시론 ‘저금리 향한 베센트의 모험’ 참조>
유동성 발작으로 ‘에브리싱 랠리’ 무너져
전통적으로 미 재무부는 단기채 20%, 장기채 80% 수준의 발행 구조를 유지해 시장 안정성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올해 단기채 비중은 55%까지 확대됐다. 장기채 공급이 급감하면서 10년물 금리는 4.6%에서 한때 3.9%까지 떨어졌고, 이 금리하락이 에브리싱 랠리를 부추겼다.
하지만 단기채 발행이 급증하자 단기자금시장은 이를 소화하지 못했다. 매수 여력이 제한된 가운데 공급만 빠르게 늘리자 단기금리는 급등락을 반복했다. 시장 스트레스는 초단기 지표금리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에 즉각 반영됐다. SOFR은 통상 연방기금금리(현 3.88%)보다 낮게 형성되지만 10월 15일(현지시간) 4.30%까지 뛰었고, 27일에도 4.31%를 기록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직후인 10월 29일에도 SOFR은 4.2% 이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SOFR 급등은 자산 전반의 가격을 흔들었다. 10월 15일 비트코인은 12만4000달러에서 10만8000달러로 급락했고, 금값 역시 온스당 4356달러에서 3900달러대로 떨어졌다. 단기금리 급등은 금융기관 조달 여건을 악화시키고, 위험자산 레버리지 수요를 빠르게 위축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식시장도 타격을 받았다.
한국 시장 역시 즉각적인 영향을 받았다. 10월 28일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조원 이상을 순매도했고, 한달 누적 매도 규모는 12조원을 넘겼다. 장기투자 성격의 자금은 단기금리 변동에 바로 반응하지 않지만 헤지펀드 등 단기자금은 즉각적으로 움직인다. 단기금리가 뛰면 가장 먼저 자금을 회수하고, 이는 한국 증시와 원화 환율에 곧바로 반영된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달러 수요가 급증하며 빠르게 상승했고, 국내 투자심리는 뚜렷하게 위축됐다.
스탠딩레포(SRF, Standing Repo Facility)는 연준이 인정한 금융회사들이 자신이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하루짜리 달러를 빌릴 수 있는 제도다. 2021년 7월 상설화된 뒤 한동안 이용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들어 이용 빈도와 금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만큼 단기자금시장의 유동성이 예전처럼 넉넉하지 않다는 신호다.
11월 3일 SRF 입찰 규모는 오전 147억5000만달러, 오후 72억5000만달러로 총 220억달러에 달했다. 전날의 503억5000만달러보다는 절반 수준이지만 월말 결제가 끝난 직후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503억5000만달러 규모의 수요는 SRF 도입 이후 최고치다.
SRF는 원래 월말이나 분기말 등 결제 수요가 몰릴 때 일시적으로 이용되는 ‘비상 대출 창구’에 가까웠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러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던 제도가 지금은 수십억~수백억달러 규모로 상시 가동되고 있다. 이제 SRF는 ‘특수 상황용 안전판’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일상적으로 의존하는 시장 ‘유동성 완충장치’로 변모하고 있다.
12월 초까지 대규모 국채 입찰…유동성 긴장 지속 전망
단기 금융시장의 불안은 연준의 적극적 개입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산가격의 큰 흐름을 결정하는 핵심변수는 결국 장기채 금리와 인플레이션이다. 12월 FOMC 회의와 양적긴축(QT) 종료 여부 등 굵직한 이벤트가 남아 있다. 특히 11월 말~12월 초까지 미 재무부의 대규모 국채 입찰이 예정된 만큼 연말 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단기채 중심 발행을 지속하면 단기자금시장 변동성은 상시화 되고 글로벌 유동성의 예측 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사상 최대 수준의 현금(9월 말 기준 현금성자산 포함 3817억달러, 총자산의 31%)을 비축하며 기회를 기다리는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현금의 가치는 유동성 변동성이 커질 때 더욱 빛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