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방 미래 여는 ‘고향사랑기부제’
고향사랑기부제는 인구가 줄고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지자체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준조세’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자체들이 관공서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강요할 여지도 있어 모금 방법이나 모금 대상을 엄격히 규제했다.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된 첫해인 2023년에는 모금액이 650억6000만원에 그쳤다. 그러나 꾸준한 제도혁신 덕분에 처음 예상과는 달리 조금씩 성장세를 보인다. 2024년에는 879억2000만원으로 모금액이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349억원을 모금해 전년 대비 1.7배나 증가했다. 행정안전부는 기부가 연말에 대거 몰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에는 1600억~2000억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한다.
불편한 기부방식 개선하고 법인기부 허용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제기된 △재난기부 △디지털 서비스 개방 △민간플랫폼 허용 △특정사업을 위한 지정기부 등을 수용한 덕분이라고 진단한다.이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향납세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도 처음부터 기부금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도입 첫해인 2009년에는 모금액이 770억원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그러나 민간플랫폼을 통해 경쟁을 활성화하고 법인·지정 기부 허용 등 제도혁신을 단행하면서 2023년에는 11조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고향사랑기부 금액을 늘리기 위해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혁신하는 게 급선무다. 2024년 고향사랑기부금 모금 결과를 분석하면 기부건수는 77만3711건으로 연말정산 결정세액 신고자 1396만명의 5.5%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직장인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얘기다.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선 몇가지 해결할 과제가 있다. 우선 기부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제도 중 혜택이 가장 크다. 10만원을 기부하면 연말정산 때 100% 돌려받을 수 있고, 금액의 30%(3만원)를 답례품으로 제공한다. 사실상 10만원을 내고 13만원을 받는 셈이다. 1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도 지방세를 포함해 16.5% 세액공제를 하지만 소극적 홍보 방식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음으로 직장인들의 기부가 저조한 이유는 방식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향우회·동창회 등 사적모임을 통한 기부 권유, 휴대폰 문자·영상 등을 통한 홍보·모금 제한은 풀렸지만, 행안부가 아직도 분기별 횟수 제한 등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 홍보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행안부 홈페이지와 민간플랫폼을 통해서만 기부토록 한 방식도 문제다. 정치후원금처럼 계좌이체를 허용하거나 일본처럼 자판기를 통해서 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부가 걱정하는 한도액 이상으로 기부금을 내거나 자신의 주소지를 확인해야 하는 문제는 지자체가 직접 확인해 세액공제를 하지 않거나 돌려주는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법인기부 허용도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09년 770억원에 불과했던 ‘고향납세제도’의 모금액이 2016년 기업으로 기부 대상을 확대한 결과 2018년에는 5조1271억원으로 늘어났다. 다행히 행안부가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한 법인기부 도입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재는 개인만 기부할 수 있지만 이를 법인에도 허용해 모금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기부 대상 지자체를 인구소멸 위기지역 등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자체는 주민복리증진, 기부자는 절세혜택
연말은 고향사랑기부가 대폭 늘어나는 시기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에는 102억1900만원, 12월에는 434억400만원으로 한해 전체 모금액의 60.99%가 집중됐다. 지자체들도 기부를 많이 받기 위해 ‘답례품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방소멸과 재정난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농촌지자체에게 고향사랑기부금은 단비와 같다. 지자체는 기부금을 주민복리 증진과 지역 활성화에 쓰고, 기부자는 지역발전에 기여하면서 절세혜택을 누릴 수 있어 상부상조나 마찬가지다. 고향사랑기부금이 지방의 미래를 열 수 있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