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롯데그룹 ‘초강도 활력 주입’
부회장단 전원 교체
젊은 CEO 전면 배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롯데그룹이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사실상 ‘전면 개편’에 가까운 고강도 쇄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부회장단 4명을 전원 용퇴시키고 9년간 유지해온 HQ(헤드쿼터)·BU(비즈니스 유닛) 체제를 폐지했다. 그룹 컨트롤타워를 대폭 축소하고 각 계열사 대표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로 방향을 틀면서, “변화 없는 조직엔 미래도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그룹 거버넌스의 슬림화 △젊은 리더 중심 재편 △실무형 인재 전진 배치로 압축된다. 지난해 유동성 위기설 이후 역대급 인사 쇄신을 단행했던 롯데는 불과 1년 만에 다시 칼을 빼들었다.
신 회장의 위기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선 그룹의 ‘얼굴’인 부회장단 전원이 물러났다.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 이영구 식품군 총괄 부회장, 김상현 유통군 총괄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부회장 등 4명이 모두 용퇴했다.
이들은 지난해 인사에서 위기 돌파를 위한 연속성을 이유로 유임됐으나, 신 회장은 이번엔 과감한 세대교체를 택했다. 그룹 내부에서는 “실적 개선이 기대만큼 나타나지 못했고, 글로벌 경쟁 압력이 심해지는 만큼 리더십 리프레시가 불가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주사는 ‘실무형 지주사’ 체제로 재편된다. 지주사 재무혁신실장 고정욱 사장과 경영혁신실장 노준형 사장이 공동 대표로 내정됐다. 재무·전략·기획을 양분해 조직 운영 효율성을 강화한다. HQ 폐지로 사라진 컨트롤타워 기능은 최소화해 필요한 부분만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화학군에는 PSO(Portfolio Strategy Office)가 신설돼 전략 조정 역할만 수행한다. 사실상 각 계열사가 독립적으로 책임경영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계열사 CEO 인사도 대폭 물갈이됐다. 전체 CEO의 3분의 1 수준인 20명이 교체됐고,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e커머스 롯데건설 롯데웰푸드 등 핵심 계열사의 수장이 모두 바뀌었다. 특징은 ‘젊고 실무에 강한 내부 인재’ 중심이라는 점이다.
1975년생 정현석 부사장이 롯데백화점 대표로 승진 내정돼 역대 최연소 대표가 됐다.
롯데GRS에서 수익성과 글로벌 사업 확장을 이끈 차우철 사장은 롯데마트·슈퍼 대표로 이동했다. 전자상거래 부문에서는 구조조정을 주도한 추대식 전무가 대표로 승진했고, 롯데건설은 개발 전문성과 재무 안정화를 모두 경험한 오일근 부사장이 사장으로 선임됐다.
신임 임원 규모는 81명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지만, 60대 이상 임원 절반이 물러나 조직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1960년생 조리명장 김송기 상무 등 ‘성과 기반’ 발탁도 이어지며 직무 중심 HR제도의 원칙 역시 유지됐다. 여성 신임 임원도 8명이 배출돼 다양성 확대도 놓치지 않았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조직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개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HQ·BU 체제를 접고 계열사 자율경영으로 전환하며, 지주사는 감독·전략 중심의 실무 조직으로 재정비했다. 이는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위한 구조라는 점에서 신 회장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속도경영’과 맞닿아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극명히 드러난 조치로 본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그의 발언처럼 롯데는 글로벌 경쟁 심화·시장 포화·체질 개선 지연 등 복합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과감한 리더십 교체, 조직 슬림화, 실무형 경영진 중심의 체계를 통해 그룹 전체에 활력을 주입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앞으로도 성과 기반 수시 인사, 외부 인재 영입, 혁신·실행력 중심의 경영 원칙을 유지할 방침이다. 신동빈 회장의 승부수는 이제 막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