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정권의 전리품 챙기기 ‘이젠 그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BNK금융지주를 비롯해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의 회장 선임 절차가 무리없이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모두 현 회장의 연임이 유력시된다. KT도 김영섭 사장이 무단 소액결제 사태 등의 책임을 지고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혀 새 사장 선임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과거 정권은 금융회사뿐 아니라 민영화된 공기업인 포스코와 KT를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착각해왔다. 정부 지분이 1도 없으면서 이들 기업의 CEO 선임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정권에 가까운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곤 했다. 윤석열정부에서 사장 후보를 두 번이나 자진사퇴하도록 압력을 넣은 KT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과거 정권들 금융회사와 민영화된 공기업 인사 전리품 취급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정권 차원의 인사개입 논란이 아직 불거지지 않고 있다. 서슬 퍼런 정권 초기의 분위기임에도 거물급 깜짝 후보의 낙하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과거 정권과 다른 점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국회 국정감사장 발언 파문도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다. 이 원장은 10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금융사 지주 회장이 되면 이사회를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일종의 참호를 구축하는 이들이 좀 보인다”면서 “이 부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BNK금융지주가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중이었고,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도 내년 3월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둔 상황이었다. 당연히 금융권은 잔뜩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처럼 금융감독원을 내세워 금융권 인사 개입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던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 원장의 ‘관계’도 이런 우려에 힘을 실었다. 이 원장이 누구인가.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인연을 맺은 이후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온 이 정권의 실세 아닌가. 금융권에서는 금융감독원이 금융위원회에 통합되지 않고 독자생존한 것도 이 원장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인식할 정도다.
그럼에도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문재인정부 시절의 경험을 봐도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참모진에게 지시했다. 당시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이 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참모들에게 “대통령이 나를 불신임하는 것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정권 내내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2018년 청와대와 기재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사의를 밝혀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또 현 정부가 민간기업 인사 개입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민주당 울산경남지역 의원들이 BNK 자회사인 부산은행의 도이치모터스 관련 대출을 문제삼아 빈대인 BNK 회장의 사퇴를 요구한 데서 보듯 여권은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다.
현 정부 민간 기업 인사 개입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미지수
그러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공직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직권남용 혐의를 덮어쓸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문재인정부 시절 산하기관장에게 사퇴 압박을 했다가 윤석열 정부 때 법정 구속된 이후 자리잡은 공직사회의 분위기다.
금융회사와 민영화된 공기업 지배구조가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제대로 정착된 것도 권력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사외이사들이 독립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CEO를 선임하는 게 일반화돼 있어 권력이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재명정부는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