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항소포기’ 동물국회 회귀 길텄다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 후폭풍 예고
거여 독주 막을 방법 없어 마찰 불 보듯
공무집행방해와 국회법 위반 등 혐의로 ‘벌금형’이 선고된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해 검찰이 항소포기에 나서면서 ‘동물국회로의 회귀’가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물국회’를 막겠다고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자연스럽게 무력화 수순을 밟게 됐다. 소수정당이 몸으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에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일종의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방법들이 사실상 거의 없는 가운데 소수당의 입지는 더 좁아지면서 갈등과 마찰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강성지지층에 기댄 정치양극화로 여야 대치국면은 일촉즉발 상태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2대 국회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윤리특위’를 구성하지 않는 등 사실상 자정능력뿐만 아니라 의지마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8일 민주당 모 중진 의원은 “2016년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충돌 사태에 대한 법원의 벌금형 선고와 검찰의 항소 포기는 동물국회로의 귀환이며 국회선진화법의 무력화”라고 지적했다.
의원감금, 법안접수 방해, 회의 방해 등에 대해 재판부는 “국회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기 위해 만든 의사결정 방식을 국회의원들이 직접 어긴 첫 사례”라면서도 ‘벌금형’을 선고해 의원직을 유지해줬다. 법원은 3차례의 전국선거에서 국민 심판을 받은 점도 언급했다.
전날 검찰은 “6년 가까이 된 분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언급하며 항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법원의 ‘국민심판론’과 검찰의 ‘분쟁최소화’는 오히려 국민들의 권한위임을 남용하고 분쟁을 키울 수 있는 있는 여건을 확장시켜준 꼴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의 선고와 검찰의 항소포기가 자정능력이 부재한 국회의 의사결정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법원은 더불어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최소한의 저지선을 인정했다”며 “명백하게 우리의 정치적인 정황과 항거에 대해 명분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는 “그날의 항거는 입법 독재와 의회 폭거로부터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지키기 위한 소수 야당의 처절한 저항이었다”고 강조했다. ‘동물국회’를 합리화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2012년 동물국회를 차단하겠다며 여야가 합의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내용이 무력화됐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회의방해 등에 대해 ‘제명’까지 가능하도록 했고 ‘징역형’까지 매길 수 있는 형벌규정을 뒀지만 전혀 적용되지 않은 결과다.
‘동물국회로의 회귀’는 이미 진행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는 일방적인 회의 진행과 욕설 반말 몸싸움이 일상화되고 있다. 모 민주당 의원이 “법사위, 과방위는 안 열렸으면 좋겠다.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난다”고 했을 정도다.
게다가 소수정당의 입지는 크게 줄여 놨다. ‘위성정당’에 참여한 소수정당과 함께 180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 ‘다수결’을 앞세워 입법독주에 나섰고 소수정당의 방어수단인 패스트트랙이나 안건조정회의는 ‘절대다수 정당’ 앞에서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또 민주당은 소수정당의 최후의 보루인 ‘필리버스터(합법적인 무제한 토론)’를 제한하는 법안을 다음달 중 본회의까지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 또한 2012년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희석시키는 것으로 평가된다.
소수정당의 저항권을 꽉 누른 상황에서 ‘회의방해’에 면죄부를 부여한 사법적 판단이 부를 후폭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