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시험대 오른 미국의 AI 산업
성장세를 구가하던 미국의 인공지능(AI) 산업이 격변기에 접어들고 있다.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는 현재의 AI 열풍을 거품이라고 경고하는 ‘AI 버블론’이 11월에 포문을 열었다. 연이어 구글이 업계 1위 오픈AI보다 더 나은 AI 모델을 출시하면서 경쟁구도 재편론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철옹성 같던 선두주자 엔비디아와 오픈AI가 동시에 위협적인 도전에 직면했고 산업 전체도 저수익 과잉투자 의혹에 휩싸였다.
AI 버블론의 대표주자는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다. 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경고했고 위기 과정에서는 총 8억달러를 벌어들인 전설적인 투자자다. 최근에는 AI 시대의 최대 수혜기업인 엔비디아와 팔란티어를 대상으로 높은 주가가 거품이라고 주장하면서 명목가치 11억달러의 공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다. 그가 버블론을 주장하는 근거는 수요와 괴리된 과잉투자, 감가상각 기간 연장을 통한 수익률 과다 계상, 지속 불가능한 높은 밸류에이션이다.
경쟁구도 재편으로 전환기에 접어든 미국 AI 산업
경쟁구도 재편은 AI 모델과 AI 칩 양면 모두에 걸쳐 있다. 구글은 자체 개발해 온 AI 칩(TPU)만을 사용해 주요 성능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AI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일례로 초고난도 복합추론을 테스트하는 ‘인류의 마지막 시험(HLE)’에서 37.5%로 타사 모델에 비해 10%p 이상 격차를 벌렸다.
경쟁 재편의 폭은 양 분야 선두기업인 오픈AI와 엔비디아의 대응 성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구글이 트랜스포머를 비롯해 AI 핵심기술의 개발을 주도해 온 기업이라는 점에서 선두기업들의 방어전략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구글은 AI 칩에서부터 AI 모델, 클라우드 등으로 연결되는 완전한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승자독식의 구도를 구축할 수도 있다.
미국 AI 산업의 미래는 어떠한 방향으로 변할 것인가? 세 방향으로의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버블론 대응 차원에서 AI 기업들은 투자 효율화와 수요기반 확충에 힘쓸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산업 AI 수요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AI 활용분야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둘째, 경쟁이 가열되면서 기술혁신은 가속화될 것이다. 딥시크 출현 이후 추격 속도가 빨라진 중국과의 격차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경쟁의 승자 중심으로 시장이 집중화되는 한편 그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등 신분야로 전환할 것이므로 AI 대상 영역은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현재의 버블론과 경쟁구도 재편은 장기적으로 AI 신분야 개척, AI 활용 서비스 확산, AI 혁신 가속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장기방향으로 가는 과정에 버블론에서 제기한 닷컴버블 때와 같은 폭락이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정은 있겠지만 폭락과 장기침체는 없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현재 AI 주도기업은 닷컴버블 때와 달리 대부분 재무상태가 양호한 글로벌 대기업이며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국가 안보의 핵심인 AI 산업의 폭락과 침체를 정부가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AI 산업 재편으로 한미 협력 기회의 창 열려
미국 AI 산업의 새로운 상황 전개는 우리나라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국내 글로벌 대기업들은 전략적 약점으로 인해 위상이 불안정해지는 미국기업들과 전략적 제휴·협업 등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최근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삼성과 현대차와의 협력 추진은 협력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2000억달러의 정부 자금은 협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기업과 정부는 미국의 AI 산업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협력전략을 구상해 공고한 한미 AI 협력에 성공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