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부과 잘못됐어도 행정소송 먼저 거쳐야”

2025-12-01 13:00:11 게재

산업은행, 차명계좌 79억원 세금 환불 소송 제기

1·2심 “90% 과세 무효, 바로 환불” … 대법, 파기

한국산업은행이 단순 차명계좌에 부과된 79억원의 세금이 부당하다며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행정소송을 통해 따져봐야 한다고 파기환송했다.

과세당국이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더라도, 명백한 하자가 있는지 먼저 따져보지 않았다면 곧바로 무효로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산업은행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산업은행은 이자 등을 지급할 때 일반 세율 14%를 적용해 이자소득세를 원천징수한 뒤 납부한다. 2017년 11월,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검찰 수사, 국세청 조사,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해 사후적으로 차명 계좌임이 밝혀진 경우 해당 계좌의 금융자산은 차등 세율 적용 대상인 비실명자산”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이 해석을 토대로 국세청, 서울시, 경기 안양시, 전남 여수시는 2018~2020년 산업은행에 고율의 이자소득세, 배당소득세, 지방소득세를 부과했다. 산업은행이 고객 차명 계좌의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에 대해 차등 세율이 아닌 일반 세율을 적용했기에, 징수하지 않은 차액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취지다. 산업은행은 부과된 세금 79억원을 모두 납부했다.

그런데 서울고법 행정9부는 2021년 12월 기업은행이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득세 징수 처분 취소소송에서 “출연자가 예금 명의자 이름으로 예금을 하고, 예금 계약의 당사자를 예금 명의자로 정하는 ‘단순 차명 거래’에 차등 세율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듬해 산업은행은 이 대법원 판결에 기반해 과세당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지 않고 곧바로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산업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계좌들은 실명확인 절차를 거쳤다”며 “애초에 90% 과세 대상이 아니었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천징수 소득세는 소득을 지급할 때 세금이 자동으로 확정된다”며 “그런데 이 사건은 과세 대상 자체가 아니어서 세금 확정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세금 부과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징수한 것은 무효”라며 “국가가 받은 돈은 법적 근거 없는 부당이득이므로 바로 돌려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이 부당이득의 성립 요건인 하자의 중대명백성을 따지지 않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법령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과세 관청이 해석을 잘못하여 과세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과세 요건 사실을 오인한 것에 불과하여 하자가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며 “과세 관청의 잘못된 법 적용이 당연 무효에 이를 만큼 명백한 실수였는지 원심이 추가로 살피지 않은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결국 산업은행은 행정소송 절차를 통해 세금 부과 자체를 취소받아야 환불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앞서 동일 쟁점을 다룬 다른 행정소송에서 “단순 차명거래는 90% 차등세율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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