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EU 전동화 강행 ‘속도 조절’ 요구
“2035 내연차 금지 재검토”
탈탄소 vs 산업현실 논란
EU 탄소중립정책 시험대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1일(현지시간) “독일이 EU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규제’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11월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전기차 외에도 하이브리드차 등 고효율 내연기관차 판매가 허용돼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서한문은 "독일의 보수진영 기민당과 진보진영 사민당간 심야협상 끝에 도출했다”고 소개했다.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부총리겸 재무장관은 “독일 자동차산업의 미래 생존력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3대 자동차 제조사는 내연기관차를 판매하며 배터리 관련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지속 요구해 왔다. BMW는 현행 판매금지 규정은 현실성을 무시하고 고용시장을 위태롭게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EU는 2022년 ‘2035년 이후 순수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조치를 의결하고, 전기차(EV) 중심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강공을 펴왔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 속도 둔화 △충전 인프라 부족 △배터리 원가 부담 △중국산 저가 EV 공세 등 복합적인 현안이 대두되면서 유럽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독일이 반기를 들었다.
독일정부는 “2035년이라는 하드 컷(hard cut)은 산업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고효율 내연기관, 합성연료(e-fuel) 등 중간기술을 인정하지 않고 ‘전기차 올인’을 강제하는 방식은 비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독일 자동차산업협회도 EU 집행부에 공식 의견을 제출하며 “기술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체코 등 자동차 부품·조립형 산업 구조를 가진 국가들도 “2035년 규제를 완화하거나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EU 내 최대 경제부국인 독일이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점은 정책 기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독일은 내연기관 기반 부품 산업, 관련 공급망, 일자리 등이 아직 전동화 전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EU 내부에서도 환경단체와 일부 집행위원회는 “규제 완화는 탈탄소 목표에 대한 퇴행”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정책의 이상(탈탄소)과 산업현실(고용·경쟁력)이 정면 충돌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정책 유연성’ 요구는 주목할 만하다. 독일은 전면 철회를 주장하는 대신 예외 조항 및 단계적 유예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PHEV·e-fuel 차량을 금지대상에서 제외하거나, 2035년 이후에도 일정 배출기준을 충족하는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친환경 정책은 유지하면서 산업 붕괴를 막는 완충 장치를 만드려는 접근이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제조 기반을 가진 국가일수록 전동화 속도는 경제적 속도와 맞물려야 한다”며 “충전망, 배터리 원료, 소비자 구매력, 글로벌 경쟁까지 고려한 유연한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