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서울에 집 없고 중소기업 다니는 김씨
최근 끝난 한 방송국의 드라마가 화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다. 중년 남성의 성공과 몰락, 그리고 재도전을 그렸다. 50대 가장의 현실, 사회적 성공의 허상, 인생의 전환점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그려내며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일으켰다. 드라마를 보고 “울컥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냉엄하다. SNS 블로거들 분석에 따르면 김 부장이 비록 극심한 경쟁과 팍팍한 서울 생활에 어깨가 짓눌린 가장이라 하더라도 자산기준 상위 5%안에 든다. 드라마 속 서울 아파트는 최소 15억원 이상이다.
대형 통신사 부장이니 희망퇴직금 포함해서 퇴직금 5억원, 좋은 대학 다니는 아들도 있고 부인은 공인중개사 알바로 생활비를 보탠다. 상가투자만 무리하게 안했으면 그런 대로 살 만하다는 댓글이 많다. 그냥 지방 가서 편하게 살면 된다는 말도 나온다.
‘집 없고 중소기업 다니는 김씨들'에 관심이나 있나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서울에 집 없고 중소기업 다니는 김씨들’이다. 아니 서울이 아닌 지방의 김씨들이 더 많다. 물론 서울이 좀 더 심각하기는 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 전체가구(415만9502가구) 절반 이상(216만354가구)이 무주택 가구다. 절반 이상인 경우는 서울뿐이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서울에 집 있는 가구 비중은 훨씬 적다.
2024년 말 기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고용 인원은 170만명 정도다. 전체 취업자 2880여만명의 극히 일부이고 그 가운데 부장급 간부는 극소수다. 열심히 사는 ‘서울 자가 대기업 김 부장’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김 부장의 애환만 봐도 울컥하는데 나머지 95%의 삶은 어떻겠냐는 취지다.
윤석열 내란 사태 1년, 이재명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났다. 세월은 빠르고 금쪽같은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가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남 탓’이다. 위정자들은 김 부장은커녕 보통 사람 김씨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냥 ‘표밭’으로만 생각할까.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기로에 섰다. 과거 박근혜 탄핵을 반면교사 삼아 “똘똘 뭉쳐 윤석열을 살리자”고 목소리 높인다. 다른 소리하면 ‘배신자’고 ‘역적’이다.
‘오답 베끼기’다. 재판을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의 기이한 행태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눈을 감는다. ‘반이재명’만 외치면 지방선거도 승리하고 권력도 되찾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듯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자칫 내란 정당으로 몰려 해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의 이런 태도는 ‘내란몰이’로 지방선거와 총선, 차기 정권연장까지 꿈꾸는 여당에게는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차기 대선고지 선점을 두고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명청 갈등’이나 김민석 차출론, 대통령실 참모들의 선거 출마 채비 등이 모두 차기와 관련돼 있다. 이른바 사법리스크 방어가 국정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 말처럼 내란사태는 ‘나치 전범’처럼 엄격히 처벌돼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권 또한 스스로에 대해 엄격하지 않으면 안된다.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조 국 사태와 실정으로 무너진 교훈을 항상 반추해야 한다. 강성지지층만 보고 ‘편한 권력’을 추구하면 유권자들은 언제든 고개를 돌릴 것이다.
권력과 자리 아닌 주권자들에게 희망 주는 정치를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가 상승작용하면서 혐오와 갈등이 집안 가족들마저 싸우게 할 지경이다. 정치권은 소모적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민생의 미래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성공한 김 부장’을 만들어야 한다.
내 집 마련은 엄두도 못내는 청장년층을 위해 자극적인 정치구호 대신 실속있는 부동산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부동산 대신 주식하라”고 꼬시지만 자칫 ‘가진 자’의 도박판에 개미들만 털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건전하고 생산적 금융 투자를 통해 부를 늘릴 수 있도록 세심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은 아니라도 ‘먹고 살 만한’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다.
김 부장이 지방 가서 살아도 상대적 손해를 보지 않도록 균형정책에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내란사태를 시급히 마무리짓고 신뢰와 타협, 상생과 통합으로 나가야 할 때다. 권력과 자리가 아니라 국민과 주권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기대한다.
차염진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