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기반 재난관리, 거버넌스가 함께 갖춰져야
정부가 인공지능(AI)을 국가 전략의 주요 축으로 설정하는 흐름은 시대적 변화에 부합한다. 산업·교육·의료뿐 아니라 재난관리에서도 AI 활용은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다. 재난관리의 핵심은 위험을 빨리 알고, 정확히 판단하고, 자원을 적시에 배치하는 일이다. AI는 이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기술적 잠재력뿐 아니라 정책적 필요성도 크다.
해외 사례는 AI가 재난관리의 속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배수관로에 1000개 이상의 수위 센서와 500개 이상의 CCTV를 설치하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CWOS)을 운영한다.
구글 플루드 허브(Flood Hub)는 현재 100개국 이상에서 홍수를 최대 7일 전에 예측한다. 2023년 80개국에서 시작한 서비스가 1년여 만에 대폭 확대된 것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산불감지시스템(NGFS)은 산불을 1분 이내에 찾아낸다. 0.25에이커(약 1000㎡) 크기의 작은 산불도 감지가 가능하다. AI는 결국 재난 대응을 ‘발생 후 대응’에서 ‘발생 전 차단’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재난관리에 AI 활용은 필수적 과제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기반 재난관리의 한계는 기술 내부보다 기술 외부에서 나타난다. 제도 운영 거버넌스가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여러 국가의 사례가 이를 확인해 준다. 첫째, 데이터 접근성의 제약이다. 재난 예측에는 기상·지형·수문·교통 등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관마다 데이터가 분절되어 있으면 AI의 분석 범위가 축소된다. 데이터 공유가 미흡하면 예측 모델의 신뢰도도 떨어진다. AI의 성능은 데이터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정상성 편향’ 문제다. AI가 조기 경보를 발령해도 현장에서 이를 곧바로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학술적으로 ‘정상성 편향’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위협 경고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려는 심리 메커니즘이다. 약 80%의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서 이 편향을 보인다.
셋째, 알고리즘 편향과 책임성 문제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편향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위험이 과소 평가되면 대응 정책의 공정성이 흔들린다. 예측 오류에 대한 책임이 불명확하면 시스템 운영도 위축된다. 실제로 2025년 텍사스 홍수 사례에서 AI 예측 실패, 데이터 통합 부족, 책임 불명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인명 피해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따라서 투명한 검증 절차와 책임성 확보 장치가 필요하다.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한 규범적 기반도 요구된다.
AI는 재난을 대신 해결해 주는 기술은 아니다. 그러나 조기 감지, 정확 판단, 자원 배분이라는 재난관리의 기본 역량을 크게 확장한다. 기술적 성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 거버넌스, 제도적 투명성, 현장 신뢰, 책임 체계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이 네 요소가 결합할 때 비로소 국가적 역량이 만들어진다.
국가신뢰와 공공안전 유지의 핵심 기반
앞으로의 재난은 더 빠르고 더 복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대응 방식은 이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정부가 AI를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면, 재난관리에서도 AI 기반 조기경보와 상황판단 체계를 국가 인프라 수준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국가 신뢰와 공공 안전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