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앞두고 바빠진 사법부
조희대 대법원장, 5부 요인 모임서 “사법개혁 신중히”
5일 법원장회의서 내란전담재판부·법왜곡죄 등 논의
법관대표들, 8일 사법제도 개선 등에 입장 표명 논의
정부·여당이 사법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도 이에 대응하느라 발걸음이 바빠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법제도 개선을 놓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한 가운데 법원장과 전국법관대표들이 잇따라 회의를 연다. 이어 법조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도 예고돼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4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법개혁 관련 법률 개정안을 내놓고 연내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3일 이재명 대통령 초청으로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5부 요인 오찬 모두발언을 통해 “사법부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가진 국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사법제도는 국민의 권리 보호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개별 재판의 결론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3심제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충분한 심리와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과 신뢰가 확보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제도 개편이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 등 행정부·입법부의 대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대법관 증원, 법원행정처 폐지 등 사법개혁 현안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달라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행정처도 5일 오후 정례 전국 법원장회의를 앞두고 여당에서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도입 법안에 대한 소속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각급 법원장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해당 법안들이 법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점, 사법권 독립과 국민 기본권 보장 관점에서 신중한 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법원에선 민주당에서 추진 중인 법원행정처 폐지안에 대한 의견도 수렴 중으로, 관련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전국 법원장들은 지난 9월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과 관련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전국법관 대표들도 오는 8일 오전 10시 정기회의를 열고 사법제도 개선과 법관 인사·평가제도 변경에 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논의한다.
이에 앞서 재판제도 분과위원회는 의안 상정을 하면서 “사법제도 개선은 국민의 권리 구제를 증진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천명하고, 이를 위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물론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의 의견이 논의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위원회는 제도 개선 과정에서 상고심 제도 개선과 사실심 강화 방안이 함께 논의될 필요성, 대법관 구성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제도 개선 필요성, 사법제도 개선에 관한 법관들의 다짐에 대한 입장 표명 의안도 내놓았다.
법관대표들이 법관평가제도 변경에 대해 논의한 뒤 우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법관인사제도 분과위는 의안을 내놓으면서 “단기적 정치적 논의나 일시적 사회 여론에 따라 제도가 성급하게 개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의 안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 “법관인사와 평가제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반드시 충분한 연구와 검토, 폭넓은 집단 의견 수렴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확인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법관인사와 평가제도 변경 시 성급한 개편으로 인한 문제점을 방지하고 공정하고 안정적인 제도 변경을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는 취지다.
법관대표회의는 정기회의에 앞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행정위원회 설치안,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도입 법안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에 설명을 요청했다.
민주당 TF가 발표한 ‘사법행정 개혁안’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과 쟁점, 이에 대한 행정처의 의견, 입법 가능성 등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내용이다. 또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대법원은 오는 9일부터 3일간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열고 법조계는 물론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사법부가 전국법관대표회의, 전국법원장회의 등을 통해 내부 목소리를 수렴한 적은 있지만 외부 전문가 등을 초청해 공청회를 여는 건 처음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