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연말 정치권발 고강도 압박에 ‘고심’
법 개정해 교육세 인상·가산금리 규제 등 항구적 조치에 우려
자본건전성 악화로 수익성 저하되면 '생산적금융' 지원 제한
금융지주 주주환원도 영향 … “황금알 낳는다고 배 가르는 격”
은행권이 연말을 맞아 정치권의 고강도 규제와 압박에 고심하고 있다. 이자장사라는 비난 속에 사회 환원을 위한 일회성 기여를 넘어서는 제도적 규제가 강화되면 항구적으로 경영상 제약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논리로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은행의 경영자율성이 침해되면 지속가능한 자금 융통 기능도 무력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세법·은행법 개정 잇따라 = 국회 법사위는 3일 전체회의에서 은행법 개정을 의결했다. 은행이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각종 법적 출연금 지출을 명목으로 가산금리를 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은행은 지표금리에 가산금리를 추가해 대출금리를 산정하는데, 이 때 지급준비금과 예금자보호료, 각종 보증기관 출연금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앞서 국회는 지난 2일 교육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 가운데 매출 1조원이 넘는 금융사를 대상으로 세율을 기존 0.5%에서 1.0%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부과 대상 기준이 매출액이어서 대부분의 중견 및 중소 금융사도 대상이다. 특히 국내 5대 은행은 은행권 전체가 납부하는 교육세의 70% 가량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스피싱 무과실 책임 배상제도의 입법도 추진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보이스피싱에 의한 고객 손실에 대해 금융사가 자기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율적으로 배상해오던 것을 과실과 무관하게 배상하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은행의 책임이 없는 데도 피해를 보상하는 데 따른 문제를 의식해 금융당국은 면책 조항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지만 ‘무과실 책임’이라는 취지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를 바꿔 사실상 상시적으로 은행의 부담을 키우고 자율적 가격(금리) 결정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이 검토하고 있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에 따른 2조원 규모의 과징금도 곧 결정될 예정이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관련 과징금도 예고돼 있다.
금융회사가 당국으로부터 각종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통상 해당 금액의 600%를 운영리스크로 인식해 최대 10년간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이 지속된다. 예컨대 금감원이 사전 통보한대로 2조원 안팎으로 확정되면 12조원 가량의 RWA가 증가하고, 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크게 악화시킨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은 3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최근 규제적 조치는 일회성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은행의 경영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과징금이야 은행이 한 행위가 있기 때문에 부담을 질 수밖에 없지만, 교육세 인상이나 가산금리를 규제하면 어떤 식으로든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2025년도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에서 “세율을 인상하면 대출금리 및 보험료 등 가격이 상승해 소비자의 비용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며 “교육세율 인상분이 전가될 경우 차주 1인당 연간 2만원 이상을 추가 부담해야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은행은 권력 앞에서 전전긍긍 =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영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조치가 잇따르면서 당사자인 은행권은 난감한 처지다. ‘이자장사’라는 딱지를 붙여 국민적인 인식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놓고 반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은행장은 “은행이 손쉽게 돈버니 결국 예대마진 낮추라는 건데 우리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문제는 자산 및 자본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산건전성 하락을 가져와 경영 전반에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세 인상에 따라 은행권 전체가 추가로 부담하는 세금은 연간 5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각종 출연금에 대해 가산금리 적용이 안되면 연간 2조~3조원 가량의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은행권 내부적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실장은 “내년 이후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은행 호황도) 올해까지가 거의 피크인 느낌”이라며 “은행권 연체율이 추세적으로 안좋아지는 상황에서 자본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어서 자연스럽게 수익성과 성장성도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은행의 자본건전성이 악화되면 자금 운용여력이 떨어져 현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에 대한 지원도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5대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현정부 임기 동안 국민성장펀드 출연 등 총 500조원 이상의 생산적금융 지원을 위한 자금동원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코스피 5000시대’의 핵심 동력인 주주환원에 가장 앞장서야 할 금융권의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솔직히 서민금융지원이든 생산적금융이든 자금을 내는 것은 은행의 공공성 측면에서 충분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본다”면서도 “금리를 법으로 규제하는 등 영구적으로 손발을 묶어 두면 시장에서 은행의 지속 가능한 자금융통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장 황금알을 낳는다고 거위 배를 가르자는 격”이라며 “그러고나면 결국 정부나 정치권이 원하는 역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