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정화 규제 완화 1년…명령 불이행 등 문제 계속
이행강제금 등 추가 제제 수단 도입 주장 제기 … 토양 지하수 등 분절적 관리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제도 보완 필요
지난해 재건축 등 건설 시장에 불소 논쟁이 불거졌다. 2024년 12월 기후에너지환경부(옛 환경부)가 불소 토양오염우려기준을 완화하며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 1년이 되어가지만 토양오염 관리를 둘러싼 문제들은 계속된다. 규제 완화만큼이나 토양오염정화 명령의 실제 이행은 물론 현실성 있는 현장 맞춤형 관리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토양오염우려기준은 사람의 건강·재산이나 동물·식물의 생육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토양오염 기준이다.
4일 토양정화업체 A 대표는 “관련 법령 등으로 토양오염을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토양환경평가의 경우 부동산 거래 당사자 간의 책임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로 실시 여부가 자율에 맡겨져 있다”며 “더욱이 토양환경평가로 토양오염이 발견되면 △오염신고 △정밀조사 △정화 등 법적인 후속 조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돼 토양환경평가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토양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사례도 현장에서는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토양환경평가는 오염우려시설이 있거나 있었던 부지를 거래할 때 토양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다.
5일 또 다른 토양정화업계 관계자 B씨는 “토양오염조사의 경우 기준 부재로 일부 시료에 대한 조사만 실시하는 게 현실”이라며 “대표성이나 신뢰성이 결여돼 품질 확보가 어려울뿐더러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예산 편성 부족 등으로 오염 토양을 불법으로 투기하거나 매립하는 사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토양오염정화 등의 내용을 담은 토양환경보전법은 1995년에 제정됐다. 이후 30년이 지났고 달라진 현실에 맞는 토양정화 체계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지난해 불소 규제완화 이후 연쇄적으로 달라지는 제도들 간의 정합성을 맞추기 위해 종합적으로 판단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토양정화 명령 미이행 대책 마련해야 =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2023년 9월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불소 규제 관련 권고를 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선진국과 같이 부지별 실정에 맞게 토양오염을 관리하는 위해성 평가제도 중심 정화체계로 전환을 추진하라”고 밝혔다. 위해성평가는 환경 유해 인자가 환경에 배출되거나 생활 환경에서 사용될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추정하는 것이다. 위해성평가 결과를 토양정화 범위와 시기 및 수준 등에 반영할 수 있다.
최근엔 정치권을 중심으로 토양오염 정화 명령 이행 집행률을 높이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5년 4월 25일 토양오염 정화 명령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토양환경보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오염토양 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화비용의 25% 범위에서 이행강제금을 2년간 매년 2회의 범위에서 반복 부과·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2025년 9월 10일 토양오염 정화 명령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토양환경보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르면 토양오염이 발견돼 토양오염도검사 등을 실시하고 토양오염우려기준을 넘는 경우 등에는 정화책임자 및 특정토양오염관리대상시설의 설치자에게 오염토양 정화조치 명령을 할 수 있다. 또한 오염토양 정화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10월까지 토양정화 조치명령 472건 중 조치명령을 미이행해 재명령한 건수는 39건이다. 2회 이상 반복적으로 미이행해 재명령한 경우도 13건이나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토양환경보전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는 의견도 나온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토양정화비용에 비해 고발에 따른 벌금이 현저히 적다는 점이 꼽힌다. 이 의원의 ‘토양환경보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4차례의 정화명령을 불이행한 경우 토양정화비용은 2600억이 넘는 대신 고발에 따른 벌금은 1000만원에 불과한 사례도 있었다.
◆토양정화기금 도입 등 다양한 논의 필요 =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양환경보전법 제도 개선 국회 토론회’에서 박종원 국립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토양오염정화책임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는 사실상 대집행과 행정형벌 뿐”이라며 “토양정화에 드는 비용을 고려할 때 지방자치단체 예산 상 선뜻 대집행에 나서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행강제금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와 함께 대집행이 실제 잘 이뤄지도록 토양정화기금 도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며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제일 중요한 건 제대로 된 비용 측정 및 평가인데 토양정밀조사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집행은 행정청이 내린 의무 이행 명령을 상대방이 따르지 않을 때 행정청이 직접 또는 제3자에게 의뢰해 그 의무를 이행하고 비용을 의무자에게 청구하는 강제집행 수단이다. 행정형벌은 행정법상 의무 위반에 대해 징역형이나 벌금형 등 형벌을 선고하는 제재이다. 토양정밀조사는 오염이 확인된 부지의 상세한 오염 범위와 특성을 파악하는 조사다.
우상원 한국환경공단 토양정화부 차장은 4일 ‘토양환경보전법 제도 개선 국회 토론회’에서 “토양오염정화현장은 변이성 폭이 굉장히 넓다”며 “한 예로 오염원이 바가지 모양이면 지표면을 기준으로 굴착해 정화가 이뤄지지만 호리병 모양의 오염원인 경우 같은 오염량이라도 비오염 토양을 굴착하는 양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정밀조사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오염량을 산정하지만 정화 시에는 해발고도를 기준으로 토목공사가 설계되기 때문에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며 “호리병이 수직으로 서있을 때와 사선으로 서있을 때를 비교하면 굴착량이나 공사량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들 사례가 토양오염정화 현장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라며 “토양오염정화 현장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획일화된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언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염정화기술 개발 투자 등 실질적 활용방안 마련 = 해묵은 문제인 토양정화 명령 비이행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분절적인 토양 오염 관리 체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토양오염 관리체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토양오염 정화는 토양환경보전법의 규제대상이 되는 토양오염물질 및 토양오염관리 대상 시설의 범위가 좁고 토양오염과 직접 연관된 지하수 오염을 통일적으로 규율하지 못하고 있어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토양 중 불소 관리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토양 위해성 평가를 개선할 때 토양은 물론 지하수 등 환경매체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는 “토양은 사람이 생활하면서 밀접하게 접촉하는 매체일 뿐만 아니라 지하수와 지표수 및 대기 등과도 상호 연관된다”며 “토양이 토양오염물질에 의해 오염될 경우 오염부지 자체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오염된 부지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토양은 토양환경보전법뿐 아니라 △지하수법 △물환경보전법 △먹는물관리법 등과 연계해 있다”면서도 “2018년 국토교통부에서 관리하던 지하수가 정부 물관리일원화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되었으나 토양과 지하수를 연계하는 방안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활용하는 공간도 땅속 깊은 곳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 확대로 과거와는 다른 토양환경오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전에 땅속 오염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기술은 물론 오염 정화 기술 개발이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토양정화업계에서는 자율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토양환경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 대표는 “토양환경평가로 토양오염이 발견될 경우 오염신고나 정밀조사, 정화 등 법적인 후속 조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당사자간 합의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개발사업 부지 내에 존재하는 조사되지 않은 오염물질이 타지역에 매립되는 과정 중 발견되는 사례가 있는 등 실제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토양환경평가를 공공부문 등이라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토양환경평가와 토양정밀조사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토양환경평가 개황조사 단계에서 개략적인 오염범위를 파악하고 정화비용을 산정해 토지 매매 협상에 활용한다. 실제 오염부지 정화 단계에서는 우리나라 정밀조사에 해당하는 ‘정화조사’를 별도로 수행한다. 이를 통해 세부 오염범위와 오염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뒤 최적의 부지정화 방안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5일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토양환경평가가 의무가 아니다 보니 많이 실시는 되지 않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토지 거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토양환경평가 의무화는 업계뿐만 아니라 국민 의견까지 함께 폭넓게 수렴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염된 토양은 정화가 끝난 뒤에나 성토제 등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며 “일부 불법 반출 시도가 있다면 지자체 등에 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