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재단 완도대우병원의 어제와 오늘

외딴 섬에서 함께하려는 의료인들…주인으로 바꿔나간 섬사람들의 공동체

2025-12-09 13:00:01 게재

노화도에서 시작된 어느 기업인의 대담한 도전

“병원 사라져도 치유는 계속된다” 희망 이어져

갯벌에 갈대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는 노화(蘆花)라는 남쪽 바다 끝의 작은 섬이 있다. 오랜 세월 아무도 살지 않던 곳에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정착하면서 ‘노화도 사람들’로 살아왔다. 하지만 누군가는 뱀에 물려 온몸에 독이 퍼져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세상을 떠났고, 어떤 이는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생선을 먹고 고꾸라졌다. 농사를 짓다가 다치고 가족이 쓰러져도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닷일을 하다가 생명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외딴 섬에 2차병원이 들어섰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뜻에서 시작됐다.

◆‘기업, 사회와 함께 봉사’ 모범 실천 = 우리나라가 처음 수출액 100억달러를 돌파했던 시기, 남루한 외피를 조금씩 벗어가는 국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업의 중역들이 머리를 맞댔다. 특히 의료 복지 교육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외딴 섬과 산골의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리했다. “기업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와 함께 봉사해야 한다”는 말이 오가며 지역사회의 장기적인 발전과 자립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1978년 김 회장이 5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대우재단은 첫 목적사업으로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낙도오지 의료사업’을 추진했다. 대우재단은 병원건립기획위원회(위원장 김효규)의 제안에 따라 신안 비금도, 완도 노화도, 진도 하초도, 무주 설천면에 4개의 대우병원을 세웠다.

1980년 개원한 완도대우병원은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한 노화도에 세워졌다. 노화도는 내륙(완도읍)에서 배로 약 35분 거리에 위치한다.

완도대우병원을 세워진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절대적으로 토지가 모자란 곳에서 돌산을 깎고 흙과 돌을 사 와서 부지를 메웠다. 골조 공사가 끝날 때 무렵 불어온 태풍으로 모두가 노심초사했다. 영락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병원을 두고 섬사람들이 찬반으로 갈라져 갈등도 했다. 병원은 그냥 뚝딱 세워진 것이 아니라 숱한 사연 속에 세워진 것이다.

이 병원에 사명감을 품고 섬으로 온 의료진들은 사람을 살리는 건 의술이 아니라 인술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완도대우병원의 ‘히포크라테스’들은 섬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줬다. 팔자타령이 이어지던 무기력한 마음을, ‘육지것’들에게 잊혔다는 섭섭한 마음을, 헛수고라고 여기던 불신했던 마음을 치유해 나갔다.

완도대우병원 24시간 응급센터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진료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주민을 마음건강요원으로 양성하는 보건사업과 병원 소재지 중고등학생 장학사업을 병행해 30년간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완도대우병원의 장학사업은 섬사람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섬을 살리려면 공부한 사람들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섬으로 돌아와야 했다. 교육이야말로 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최초로 장학생 110명을 시작으로 장학사업으로 꾸준히 시행됐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육지로 나갔던 많은 학생이 섬으로 돌아오기보다는 그곳에서 뿌리내리는 걸 택했다. 그렇다고 돌아오지 않는 약속에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더 넓은 세계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어준 것만으로도 장학사업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니까. 결론적으로 장학사업 또한 소기의 성과를 풍성하게 거둔 셈이다.

1980년 개원한 완도대우병원은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한 노화도에 세워졌다. 사진 대우제단 제공

◆완도대우병원, 주민 노력으로 새로 태어나 = 2010년 완도대우병원은 30년간 소임을 다했다. 세월이 흘러 선진국 반열에 오를 만큼 경제가 성장했고 사회간접자본들도 탄탄하게 구축돼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변해갔다.

완도대우병원은 주민들의 제안을 반영해 ‘행복나눔섬지역센터’로 변신했다. 병원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섬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행복나눔섬지역센터는 지역사회발전을 촉진하는 지역센터를 자처했다. 주민들이 지역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도록 지원했다.

섬사람들은 병원공간을 모두가 어울리고 웃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 나갔다. 10여년 동안 총 10개 주민단체가 센터를 통해 아동 청년 주부 노인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입소한 단체 중에는 ‘섬사랑평생교원’이 노인 대상 문해(한글) 교실 및 키오스크 교육을 진행한다. ‘노화작은마을학교’는 아동 대상으로 놀이 및 문화 체험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한다. ‘도란도란마을학교’는 유아동 대상으로 공예 및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한다. ‘함께가요 빙그레갈꽃섬’은 취약계층 대상으로 방문 자원봉사를 진행 중이다.

행복나눔섬지역센터는 2025 섬주민의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예방하는 도서민돌봄센터를 개소했다. 완도군과 대우재단이 옛 완도대우병원 병동을 리모델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섬 고유의 콘텐츠를 장착하는 마음치유센터(가칭)와 섬 미술관(가칭)을 준비 중이다.

대우재단 지음/북스코프 1만7000원

◆사람을 살리는 건, 공동체의 힘 = 9일 외딴곳이었던 노화도, 이 오래된 섬이 세상에 알려주고 싶은 말들 그리고 대우병원의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실은 책이 ‘멀리서 온 약속’ 이름으로 나왔다.

장병주 대우인회 회장(전 ㈜대우 사장)은 “불과 42세에 재산을 출연해 낙도오지에 병원을 세운 김우중 회장의 깊고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며 “노화도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병원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얼마나 많은 의료인의 희생과 봉사가 있었는지 생생하게 느꼈다”고 추천했다.

대우재단은 노화도 이 오래된 섬이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것은 “사람을 살리는 건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 “울고 웃으며 함께 쌓은 시간들을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 “되는 일에는 그 중심에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말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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