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폭설이 쏘아올린 ‘일하는 시장론’
지난 5일 정원오 폭설대응 호평에
오세훈 “나도 일 잘하는 시장” 여유
지난 5일 서울에 내린 폭설이 ‘일하는 시장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대통령이 포문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6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정원오 구청장이 일을 잘하긴 잘하나 봅니다”라며 긴급 폭설 대응 등 정 구청장의 일머리를 칭찬하는 글을 올렸다.
정 구청장도 ‘일’로 화답했다. 그는 대통령이 올린 글에 “원조 ‘일잘러’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 감개무량하며 더욱 정진하겠습니다”고 답글을 달았다.
정치권 반응은 당황스러움과 비난으로 갈렸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콕 짚어 특정 지자체장을 칭찬하자 당혹스런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장 후보들이 줄지어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야당에선 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한다며 관권 선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야당 유력주자인 오세훈 시장 반응은 달랐다. 해외 출장 중인 오 시장은 현지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여당의 다른 주자들과 정원오 구청장은 차별화된다”며 “일 잘하는 구청장인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서울시정에 접근하는 모습 또한 무차별적인 비난으로 일관하는 타 주자들과 달리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정원오 띄우기, 오세훈의 계산된 행보? =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의 정원오 구청장에 대한 호평을 두고 전략적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 구청장은 여당에서 거론되는 김민석 총리 강훈식 비서실장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급이 낮다. 자신의 경쟁 상대를 손쉬운 후보로 고르기 위해 일부러 정 구청장을 띄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진즉부터 ‘일하는 시장’을 표방해온 오 시장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분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정치 일정이나 사안에 대해 종종 입장을 밝혀오긴 했지만 평소 오 시장은 서울시정의 다양함과 복잡함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일 잘하는 시장으로 이름 붙였다. 일하는 시장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각종 사업 현장을 누비는 것에서도 ‘서울시정에 무지한 이들보다는 일을 할 줄 아는 상대가 낫다’는 생각이 드러난다는 게 오 시장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대통령은 물론 오 시장까지 ‘일 잘하는 단체장’을 강조했지만 폭설이 이를 더욱 확산시킨 것은 서울시와 성동구의 제설 대응이 눈에 띄게 비교됐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서울시는 폭설 두시간 전 염화칼슘을 미리 살포하는 등 제설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눈이 쏟아지면서 제대로 손을 써보기도 전에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반면 성동구는 구청장 명의의 문자를 통해 상세한 제설대응 과정과 상황을 안내했고 실제 직원은 물론 소방과 경찰까지 총동원한 밤샘 대응으로 교통대란 및 시민 불편을 최소화했다.
또다른 비교는 대응 속도다. 시와 구 모두 사전 대응에 나섰지만 속도와 규모 면에서 차이가 현격했다는 점이다. 구 관계자는 “성동구 제설대책은 강화도에 눈 소식이 있으면 즉각 실시된다”며 “ 강화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1시간 30분 또는 2시간 뒤엔 성동구에도 눈이 온다는 기상통계 분석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줄투표 깨뜨리는 ‘일꾼론’ = 긴급 폭설이 계기가 됐지만 향후 일하는 시장론은 지방선거 화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기초단체장 출신 대통령의 출현과 주민들의 높아진 투표 인식이 이를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성동구에서 37.5%를 얻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23.3%p 차이로 패했다. 하지만 함께 치러진 구청장 선거에서 정원오 민주당 후보는 57.6%를 득표해 당선됐다. 같은 당 시장과 구청장 후보를 연달아 찍는 이른바 줄투표가 일반적인 행태임을 감안하면 약 20%p 가까운 유권자들이 당이 다른 시장과 구청장을 찍은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방자치가 발전하고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단순한 지명도나 중앙에서 내려꽂는 후보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 것”이라며 “당보다 인물, 특히 일하는 능력이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