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누가 그들을 철면피로 만들었나
국립국어연구원에 따르면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가리켜 ‘철면피(鐵面皮)’라 한다. 그런데 철면피라는 오명은 쉽게 벗을 수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제때 사과만 잘해도 한순간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네”로 바뀔 수도 있다.
12.3 계엄선포 이후 보여준 윤석열 전 대통령 행태는 철면피 중에서도 수준급이라 할 만하다. 뜬금없는 계엄을 선포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아직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듯하다. 아니면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아 뭉개고 있을 수 있겠다.
윤석열에 몰표를 몰아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대구경북에서도 최근 제2, 제3의 ‘윤석열류’ 철면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도민의 대의기구의 경북도의회 의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나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의장직에 복귀했다. 그는 도민전체를 상대로 공식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경북도 교육감도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가 2심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이 무죄가 죄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데도 그 역시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신현국 문경시장은 직권남용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김충섭 김천시장은 공직선거법과 공금횡령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아 올해 보궐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또 지난 3월 박남서 영주시장도 당선무효형을 확정받고 시장직을 박탈당했다.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은 지난 5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과 별개로 건강상의 이유로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직무소홀로 사퇴압박을 받고 있지만 4년 임기를 고수 중이다.
결은 다르지만 대구시장은 대선출마로 중도사퇴했고 보수정당 국회의원 출신인 대구시교육감도 개인 송사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자리를 내놓은 인사도 없었고, 공개사과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심리적 배경에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 확정이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간만 보내면 된다’는 못된 심보가 깔려 있는 듯하다. 이런 일들이 유독 TK에만 기승을 부린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권성동 윤상현 의원은 “얼굴을 두껍게 다녀야 한다” “탄핵을 반대해도 1년 후엔 다 찍어주더라”는 말로 계엄으로 상처난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질렀다. 다시 선거철이 시작된다. TK에서 내년 6.3 지방선거에서 또 철면피 정치인들이 얼마나 양산될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선택은 TK 유권자 몫이다. 유권자 수준이 정치인 수준을 결정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