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돈 흐름, 부동산에서 기업으로 돌려야”

2025-12-10 13:00:01 게재

가계대출 10%p 기업 전환시 GDP 0.2% 상승

이재명 대통령 자본시장 활성화와 비슷한 맥락

한국은행이 부동산으로 쏠린 돈의 흐름을 기업으로 돌리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으로 집중된 자산이 주식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생산적 기업부문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금융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한은·한국금융학회 공동 정책 심포지엄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신관호 한국금융학회 회장 개회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은은 9일 발표한 ‘생산부문으로 자금흐름 전환과 성장 활력’이라는 보고서에서 가계신용을 명목GDP 대비 10%p를 줄여 기업부문으로 돌리면 장기적으로 실질GDP가 0.2% 더 성장할 것으로 추산했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실장 등이 내놓은 이날 보고서의 핵심은 ‘우리나라 민간신용에서 부동산 등 가계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기업부문으로 돌리자’는 내용이다.

실제로 황 실장 등이 1975년부터 2024년까지 43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민간신용(가계+기업)의 규모가 같아도 기업으로 배분된 비중이 높으면 장기 성장률이 개선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업으로 가는 자금의 비중이 하락하고 가계부문으로 집중됐다. 지난해 말 한국의 GDP대비 가계신용은 90.1%로 미국(69.2%)과 일본(65.1%) 등에 비해 높았다.

특히 가계신용의 대부분은 부동산에 몰려 있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신용의 49.7%(1932.5조원)가 부동산부문에 쏠려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한정된 자본이 비생산적 부문에 집중되면 생산부문에 대한 자본공급이 제한된다”며 “자본투입 감소는 총산출 감소로 귀결된다”고 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장기 실증분석을 기초로 현재 가계신용의 GDP 대비 비중(90.1%)을 10.0%p 줄여 80.1%까지 낮추면 기업신용 비중은 110.5%에서 120.5%로 늘어나고 장기 실질GDP 성장률은 0.2% 증가한다고 추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현재 추세라면 2040년대 0%대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자원이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배분되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 대통령이 취임이후 강조한 자본시장 활성화 취지와도 맞아떨어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수단으로 만들면 경제 전체가 선순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스피 5000시대’를 내걸고 자본시장을 활성화시켜 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리자는 취지이다.

한은이 강조하는 신용의 재분배와 이 대통령이 말하는 자본시장 활성화가 ‘대출’과 ‘투자’ 등 구체적인 자산의 배분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건전한 기업으로 돈이 흐르게 하자는 취지에서는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도 정부와 한은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다른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가계가 돈을 빌려 부동산을 구입하는 추세는 지금까지 계속됐다”며 “과도한 부동산 쏠림은 소비를 제약하고 집값 상승에만 목을 맨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자금이 주식시장 등을 통해 기업으로 가면 자본시장이 활성화되고 환율문제도 일부 해결될 수 있다”면서 “제도적 큰 틀을 개혁해야 자본시장이 육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자본시장으로 돈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업의 이익이 발생해야 지속가능하다”며 “정부가 말로만 주가를 올리겠다가 아니라 4차산업혁명 등에 대한 규제를 풀어 기업이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