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꼬리 자르기’…김범석 의장 침묵 지속
대표 교체에도 책임 공방 … “실질 오너는 어디에 있나”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을 물어 박대준 대표를 전격 교체했지만, 여론의 시선은 진원지인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의장에게 향하고 있다. 업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쿠팡은 10일 박 대표의 사임과 함께 미국 모회사 쿠팡Inc의 해럴드 로저스 최고관리책임자(CAO)를 한국법인 임시 대표로 선임했다.
박 대표는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물러났지만, 여론은 김 의장의 침묵을 문제 삼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 국회 과방위에서 “올해 김범석 의장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증언해 실질적인 의사결정 구조 이원화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정치권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쿠팡 사태는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지시했다. 경찰은 이틀 연속 송파 본사를 고강도 압수수색했다. 총리가 특정 기업에 ‘징벌적 배상’을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김 의장은 사태 발생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국 법인의 문제라는 내부 설명 뒤에 숨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표 역시 국회에서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말하며 김 의장을 대신했다. 업계에서는 “처음부터 방어막 역할을 위해 단독대표를 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후임에 미국인 법률 전문가가 선임된 것도 논란을 키운다.
로저스 대표는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으로 김 의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대규모 소송 대응을 총괄할 인물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위기 때마다 소통보다 법리 대응을 우선했다”며 “이번 인사 역시 소비자 신뢰 회복보다는 법적 리스크 최소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대응도 문제로 떠올랐다.
17일 열리는 청문회 증인으로 김 의장이 채택된 상황에서 그 대신 로저스 대표가 출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로저스 대표가 한국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을 방패로 삼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비자 불신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피해자 수천명이 집단소송에 나섰고 미국에서도 쿠팡Inc를 상대로 한 주주 소송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쿠팡이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지만 정작 실질 오너의 책임 있는 대응이 빠져 있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 한 명 교체한다고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국민적 분노가 향하는 방향은 분명한데, 쿠팡은 여전히 핵심을 피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위기관리는 다시 한 번 ‘오너 리스크’를 시 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