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전환 시대 사회적 대화

복합대전환 시대, 경사노위 역할 재정립 시급하다

2025-12-12 13:00:01 게재

민주노총 불참·정부주도 타협, 사회적 대화 제도화 방해 … “국회·지역·산별 연계, 다원화·다층화·중위수준 강화해야”

“기술혁명과 산업구조 재편, 기후위기 대응, 인구감소와 지역 불균형, 국제 공급망 재편까지 우리는 복합전환의 거대한 파고가 노동시장 전체를 흔드는 시대에 서 있다. 전환의 충격을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노사정 중심의 국가적 조정력이 필수다. 그 중심에 사회적 대화가 있다.”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복합 전환의 노동시장 위기와 해법’을 주제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복합전환 대응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조정’”이라며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전환에 따른 위험과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한다면 복합전환은 위기가 아니라 성장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사노위는 노사정과 함께 한국형 ‘복합전환 대응 사회적 대화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복합전환에 직면한 노동계는 일자리 감소와 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정형 노동 증가로 인한 고용 불안정과 사회적 이중구조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한 중층적 사회적 대화 구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노사정은 국가적 위기마다 함께 힘을 모았던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며 “전례 없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상생의 정신에 기반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새정부에서는 복합전환 시기 일터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는 사회 혁신을 노사정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경사노위, 26년만에 공식회동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을 방문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후 경사노위와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황덕순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기조발제에서 “지금 세계는 메가트렌드가 동시에 중첩되며 노동시장에 전례 없는 복합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저성장·인구구조의 변화는 성장률과 경제활력 저하로, 디지털화·인공지능(AI)의 확산은 업무자동화와 일자리의 성격변화로, 녹색전환은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전 원장은 “한국은 특히 초고속 고령화와 낮은 생산성, 비정형 노동의 증가 등 복합전환의 충격에 특히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며 “복합전환에 슬기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청년·여성·고령층의 고용률 제고 △비정형 노동을 위한 새로운 사회보장과 고용정책 △탄소감축 과정에서의 취약계층 및 산업보호 등 사회 전체의 구조적 대응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황 전 원장은 “정년연장 방안, 새로운 고용관계에 대응한 노동권 보장이나 사회보호 방안, 정의로운 전환 등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적 공론장을 활성화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 구조변화 공정분배 핵심수단 = 세션1 ‘복합전환에 따른 노동시장 위기 진단 및 대응전략’에서 친치아 델 리오 유럽경제사회위원회(EESC) 고용·사회·시민권 분과위원회 위원장은 “AI·디지털 전환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며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적 공백을 메우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책임있는 AI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연합에서는 AI의 노동시장 영향 전반을 포괄하는 법은 없지만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윤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체감하고 있다”며 “사회적 대화는 구조적인 변화를 관리하고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안 벨츠 유로파운드 객원연구원은 유럽연합의 녹색전환 등 공정한 전환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기반으로 했던 오스트리아 덴마크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사례를 제시하며 “녹색전환의 공정성과 포용성 확보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모든 전환 정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길은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주도의 무역질서가 급속히 재편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산업, 특히 제조업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고환율·고관세 환경 속에서 철강·석유화학 산업은 수출규제와 과잉설비, 고정비 부담 등으로 구조조정·고용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부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복합전환의 시대 국제 컨퍼런스 ‘노동시장의 위기와 해법을 위한 미래비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경사노위 제공

◆전환기 유연성은 ‘권리 포기’가 아니라 ‘공익·기회 확장’ = 세션2 ‘복합전환 위기극복을 위한 새정부 사회적 대화의 혁신과 미래’에서 아포스톨로스 시라피스 국제노사정기구연합(AICESIS) 사무총장은 “사회적 대화가 임금협상의 도구에 머물러선 안된다”며 “갈등을 조정하고 미래를 공동 설계하는 국가의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사노위의 기능강화와 산업별·지역별 현장 목소리의 수렴, 산업쇠퇴 지역을 위한 전환협약, 청년·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를 위한 디지털 참여 플랫폼 구축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의 불참과 정부주도 타협의 반복이 사회적 대화의 안정적 제도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방향으로 ‘다원화·다층화·중위수준 강화’를 제시하며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국회·지역·산별 수준의 연계와 ‘혁신과 형평’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후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당시 공기업 및 대기업 구조조정에 반발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이후 지도부가 여러 차례 노사정 사회적 대화 복귀를 시도했지만 강경파 등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노사가 기존의 교환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교환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존 교환구도는 노사가 노동기본권을 포기하고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비동시성이고 부등가 교환이었기 때문에 지속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교환구도는 혁신과 형평, 기회와 권리”라며 “전환기 유연성은 ‘권리 포기’가 아니라 ‘공익·기회 확장’ 전략이고 상층 노동자의 기득권과 하층·미진입자의 박탈구조를 넘어 전환의 수혜를 노동계급 전체로 확장하는 구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복합대전환의 시대에 사회적 대화체제의 자기쇄신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대화가 정년연장, 주4.5일제 같은 가시적 의제뿐 아니라 지역소멸, AI 전환, 플랫폼 노동 등 숨은 의제에 대한 발굴 및 이를 다룰 다층적 대화구조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경사노위는 메타조정자로 재정립하고 각 수준의 중심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복합대전환은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창으로 경사노위가 재탄생하고 한국의 사회적 대화 체계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한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폐회사에서 “복합전환의 시대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수준의 사회적 대화의 구축이 필요하다”며 “‘포용적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모델을 마련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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