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더듬이 따라한 ‘슈퍼센서’…다중 감각 로봇 탄생
생태모방이 낳은 기술 혁신
재난현장·우주탐사 등 활용
나비가 꽃밭을 날 때 더듬이는 쉬지 않고 일한다. 바람 세기를 느끼고, 날갯짓 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일을 더듬이 하나로 동시에 해낸다는 점이다. 자연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의 기술로 구현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난제를 푼 연구 결과가 나왔다.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의 논문 ‘곤충에서 영감받은 초소형 광학 안테나로 초고감도 다중감각 인식 구현’에 따르면, 중국 저장대학교의 리티에펑 교수 등 공동연구팀은 촉각 후각 청각 등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는 ‘마이크로 광학 안테나(MOA)’ 개발에 성공했다. 머리카락 굵기에 무게는 1㎎에 불과한 이 광학센서는 초소형 로봇에도 장착이 가능해 재난 현장 인명 구조나 우주 탐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소형 로봇과 생체의료 분야에서 작고 가벼운 센서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 하지만 기존 전자센서는 작아질수록 신호가 약해지고 주변 전자기파 간섭을 받기 쉬웠다. 배터리 소모도 커지는 한계가 있었다. 곤충 더듬이처럼 촉각·청각·후각을 하나로 통합한 센서 개발이 시도됐으나 실제 로봇에 탑재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곤충 더듬이의 작동 원리에 주목했다. 곤충은 더듬이의 풍부한 수용체로 기계적·화학적 자극을 생체전기 신호로 바꿔 민첩하게 움직이고 먹이를 찾는다. 연구팀은 이를 모방하되 전기 대신 빛을 이용하는 광섬유 방식을 택했다. 광섬유는 직경 1㎛까지 작아져도 성능 저하 없이 낮은 손실과 빠른 응답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MOA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광섬유를 U자로 구부려 특수 필름으로 감싼 구조로 만들어졌다. 누르거나 소리가 나면 광섬유가 휘어 빛이 새고, 가스를 만나면 필름이 빛을 막는다. 빛의 양 변화로 무엇을 감지했는지 구분하는 식이다. 광섬유 기반으로 제작한 이 센서는 세포 하나가 받는 힘을 감지하고 0.08초 만에 가스 농도 변화를 포착하는 등 기존 센서를 뛰어넘는 성능을 보였다. 실험에서 날갯짓 로봇은 이 센서로 비행 중 유해가스를 감지해 자율적으로 착륙했다.
후각 센서는 색깔 변화를 감지하는 원리를 사용한다. 센서 필름에는 브로모티몰블루(BTB)라는 화학 지시약이 들어있어 평소에는 노란색을 띤다. 암모니아 가스가 필름에 닿으면 BTB가 반응해 파란색으로 변하고, 파란색 필름은 광섬유를 통과하는 빨간빛을 흡수한다. 빛의 양이 얼마나 줄었는지 측정하면 가스 농도를 알 수 있다. 이 방식으로 28ppb의 미세한 농도도 0.08초 만에 감지할 수 있다. 이처럼 신속하고 미세한 양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가스 누출 사고와 같은 현장에서 빠른 대응이나 예방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곤충 더듬이는 소리로 유발된 진동을 생체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MOA 역시 이와 유사한 원리로 청각 감지 기능을 만들었다. 10Hz부터 10MHz까지 광범위한 주파수를 감지하며, 100Hz에서 0.01Hz 차이도 구별한다. 이는 대부분의 동물 청각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벌의 날갯짓 주파수(193.1Hz)도 포착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연구의 핵심은 촉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MOA 시스템을 날갯짓을 하는 나비 로봇에 장착해 실제 비행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센서를 0.1g으로 경량화해 날갯짓 나비 로봇 머리 양쪽에 더듬이처럼 달았다. LED 광원과 감지기를 센서에 직접 결합해 무게를 줄였다. 센서와 컴퓨터, 배터리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은 6g 미만이었다.
이 나비 로봇은 비행 중 △날갯짓 소리(저주파) △외부 음향(중주파) △암모니아 농도를 동시에 확인했다. 실험에서 로봇은 정상 환경에서는 아치를 통과했지만, 암모니아가 임계치를 넘으면 스스로 제동을 걸고 아치 앞에 착륙했다. 이는 사람이 명령한 게 아니다. 센서가 유해가스를 감지하자 나비 로봇 스스로 판단해 착륙한 것이다. 센서-판단-제어가 실시간으로 이뤄진 자율비행이다.
연구팀은 또한 10㎝ 미만 크기의 무당벌레 모양 지상 로봇에도 MOA 시스템을 장착해 △촉각 탐색 △음향 수집 △유해가스 탐지 능력을 시연했다. 이 기술은 전자회로 대신 광섬유를 사용해 전자기 간섭에 영향받지 않고, 극저전력으로 작동한다는 장점이 있다. 센서 1개로 10만회 이상 압력을 가해도 성능 저하가 없었다.
이 논문에서는 “더 얇은 광섬유와 특수 구조를 사용하면 크기와 감도를 더욱 개선할 수 있다”며 “곤충 크기 로봇이나 초소형 비행체에 적용해 재난 현장 수색, 환경 모니터링, 우주 탐사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