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전쟁 중' 주사에서 알약으로…흡수율 높이는 게 성공 열쇠

2025-12-16 13:00:01 게재

노보와 릴리 양강 구도 속 후발주자 뒤쫒아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오르포글리프론 주목

경구용 비만치료제 경쟁이 치열하다. 주사에서 알약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흡수율을 높이는 제제가 성공의 길을 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근희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경구용 비만 치료제는 환자 순응도와 시장 확대 측면에서 차세대 치료 패러다임을 열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향후 펩타이드 경구제의 기술적 허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비펩타이드 경구제의 안전성을 개선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16일 밝혔다.

전 세계 비만 환자는 이미 10억명에 달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비만을 단순한 생활습관 문제가 아닌 만성질환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주사제 기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약물이 놀라운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하며 시장을 개척했다. GLP-1은 인체에서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의 일종으로, 혈당을 조절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기 치료 관점에서 환자 순응도를 높일 수 있는 경구제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각각 펩타이드 기반, 비펩타이드 기반 경구 비만치료제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펩타이드는 단백질의 작은 조각이다. 신호 전달, 구조 형성, 혈압 조절 등 다양한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의 도전과 한계 = 펩타이드 약물은 원래 주사로만 사용했다. 위장관에서 분해되고 흡수도 안돼 알약으로 개발이 쉽지 않았다. 노보 노디스크의 대표적인 시도는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다. 이미 당뇨치료제로는 라이벨서스라는 브랜드로 판매 중이다. 비만치료제로는 2026년 발매될 예정이다.

주사제형인 위고비의 성분과 동일한 GLP-1 유도체를 경구로 전달하기 위해 흡수보조제를 결합한 제형이다. 나트륨 의존성 중성 아미노산 수송체(SNAC)은 펩타이드가 위산에 분해되지 않도록 하며 위 점막 세포막의 유동성을 일시적으로 높여 펩타이드가 혈액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임상시험에서 일정 수준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경구 제형은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첫째, 흡수율의 한계가 있다. 펩타이드는 본질적으로 펩신, 트립신과 같은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되기 쉽다. 소분자 약보다 분자량이 크다. 물에 잘 녹는 극성 구조라서 지질로 된 세포막을 통과하기 어렵다.

또한 음식물이 위와 장을 빠르게 지나가므로 펩타이드가 흡수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의 경우 생체이용률은 1% 내외에 불과하다. 고용량을 투여해야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환자 편의성과 생산 효율성 모두에 불리하다.

둘째, 생산 능력의 제약이 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화합물 약물과 달리 펩타이드 합성은 원가와 공정 부담이 크다.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장기 처방을 고려한다면 공급망 문제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원가만 따지면 주사 제형으로 판매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환자 순응도 측면에서 경구 제형의 개발은 필수적일 것이다.

주사제 대비 알약은 심리적 저항이 적고 복용 지속률이 높기 때문에 순응도가 개선되어 초기 환자, 경증 환자, 예방 단계 환자까지 시장이 넓어질 수 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경구 치료제가 원가율이 높아도 시장 확대 효과를 감안하면 경구 치료제 포트폴리오 확장은 필수이다.

◆비펩타이드 기반 경구제, 오르포글리프론의 가능성 = 릴리가 개발 중인 오르포글리프론은 경구 비만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례로 꼽힌다. GLP-1 수용체에 결합하는 저분자 화합물이다. 펩타이드와 달리 소화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지 않고 흡수율도 상대적으로 우수하다. 비펩타이드 경구제의 장점은 명확하다. 화학 합성 기반이므로 펩타이드 대비 제조 단가가 낮고 글로벌 공급망 확대가 용이하다. 또한 흡수 보조제가 필요 없어 복용 편의성이 높다.

그러나 단점 역시 존재한다. 저분자 화합물은 특이성이 떨어져 다른 수용체와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위장관계 외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간독성, 심혈관계 이상 반응 등 장기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

현재의 GLP-1 계열 주사제와 마찬가지로 초기 저용량부터 점차 증량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부작용을 줄여주지만 순응도 측면에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초기부터 고용량 부작용으로 임상을 중단하는 경우를 줄여 복용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

장기 복용 시 고용량까지 도달 가능성을 높여 체중 감량 및 대사 개선 효과를 최적화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단계별 용량 변경을 잊거나 혼동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순응도가 오히려 저하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포글리프론은 임상 3상에서 주사제 대비 손색없는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는 공복에 복용해야 하며 30분 대기해야 하는 등 복약 지침이 까다롭다. 또한 비만용 고용량(표준임상에서 50mg 복용)도 점증 방식이 필요하다. 반면 오르포글리프론은 식사 타이밍 제약이 없기 때문에 복용 스케줄이 단순하다. 향후 대규모 3상 결과에 따라 글로벌 경구 비만치료제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외 글로벌 경구용 파이프라인 현황 = 현재까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파이프라인은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상용화 경험, 1H26 미국 발매)와 릴리의 오르포글리프론(임상 3상 진행 중, 2H26 미국 발매, 경쟁력 높은 데이터 확보)로 평가된다. 노보와 릴리 외에도 여러 제약사가 경구용 비만치료제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암젠은 이미 마리타이드(maritide)라는 주사제 기반 이중작용제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경구용 제형 플랫폼 탐색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이자는 GLP-1 저분자 계열 후보물질을 전임상 단계에서 다수 보유했으나 일부 독성 문제로 임상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이자의 대규모 연구개발 역량을 고려할 때 새로운 후보군 재발굴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로슈는 2023년 12월에 인수한 미국의 카못 테라퓨틱스의 CT-996를 개발 중이다. 임상 1상을 마친 뒤 임상 2상 진입을 계획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3년 11월 중국 에코진으로부터 AZD5004를 라이선스했다. 초기 결과에서 안전성 내약성이 확인됐다. 현재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머크는 중국 항서제약과 2024년 12월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경구용 신약 후보물질인 HS-10535를 개발 중이다. 아직 전임상 단계에서 연구 중으로 전략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바이오텍은 미국의 바이킹 스트턱처 턴스, 중국의 이노벤트 애스클레티스, 국내는 디앤디파마텍/메트세라 등이 펩타이드 및 저분자 기반의 경구 GLP-1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아직 글로벌 톱티어와 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임상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노보와 릴리의 양강 체제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글로벌 빅파마와 중국 바이오텍의 도전으로 시장 진입 장벽이 점차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경구용 치료제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개별 제약사의 성과를 넘어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와 직결될 것”이라며 “지금의 임상시험 결과들은 이러한 변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시그널이며 향후 5년간 연구개발이 시장 판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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