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위험의 외주화’ 경쟁

2025-12-16 13:00:01 게재

건설에 수조원 이상 필요 … 메타 MS 등 빅테크들, 금융위험 떠넘기기 전략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경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막대한 투자 위험을 누가 다른 곳으로 넘길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요소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즈는 15일(현지시간) ‘기술 대기업들은 어떻게 AI 붐의 위험을 떠넘기고 있는가’ 제하 기사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직접 짓고 소유하는 대신 새로운 금융구조를 활용해 위험을 외부로 이전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전력공사 전력ICT 대전센터. 사진 한국전력 제공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데이터센터는 단일 프로젝트에 수백억달러(100억달러=약 14조7000억원)가 투입되는 초대형 인프라다. 문제는 AI 수요가 향후 수십 년간 얼마나 지속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요 예측이 빗나갈 경우 데이터센터는 고정비 부담이 큰 ‘좌초 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는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빅테크들은 막대한 고정자산과 부채를 자기회사 장부에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타의 미국 루이지애나 데이터센터다. 메타는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해 사모대출사 블루 아울 캐피털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메타가 테이터센터를 건설했지만 자금의 80%는 블루 아울이 부담했고, 메타는 4년 단위 임대형태로 사용한다. 회계상 부채가 아닌 운영비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다. 대신 데이터센터의 장기 가치 변동 위험은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떠안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데이터센터를 직접 건설하기보다, 네오클라우드라 불리는 신흥 데이터센터 업체들과 3~5년짜리 단기 계약을 대거 체결했다. 장기 설비투자 대신 임대계약을 통해 AI 수요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수요가 바뀌면 손해를 떠안고 싶지 않다”고 말한 배경이다.

이러한 전략은 빅테크에는 유리하지만, 위험은 중소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금융권으로 이동한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일부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은 AI 수요를 전제로 대규모 차입에 나섰고, 고금리 부채를 안은 채 특정 고객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AI 붐이 둔화될 경우 충격은 이들 기업과 투자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위치만 바뀐 것”이라고 지적한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시바람 라즈고팔 교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위험은 치약 튜브와 같다”며 “여기를 누르면 다른 쪽으로 튀어나온다. 위험은 항상 시스템 안에 존재하며,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AI 인프라 경쟁이 ‘기술 싸움’을 넘어 ‘금융 구조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조 원 규모의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시장은 AI 기술 전쟁이 아니라, 위험을 누구에게 떠넘길 것인가를 둘러싼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빅테크들의 AI 데이터센터 전략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빅테크들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면서 장기 직접 투자 대신 임대·단기 계약 중심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힌국에서도 대기업·플랫폼 기업은 ‘수요자’, 중견·전문 금융사업자는 ‘위험 부담자’로 역할이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장기 전력 인프라 투자에 민간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전기요금 인상 압박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미국식 AI 데이터센터 모델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오면,‘데이터센터는 민간 수익, 전력 인프라는 공공 부담’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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