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민낯…성탄케익 4900원 vs 50만원

2025-12-16 13:00:01 게재

유통업계 ‘에루샤’ ‘올다무쿠’로 양분 … “싸지도 특별하지도 않는 상품 설자리 없어”

고금리·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내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비 방향이 극단적으로 갈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저가와 초고가로 대표되는 ‘소비의 초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연말 크리스마스 케이크 시장은 소비양극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급호텔은 50만원짜리 한정판 케이크를 내놓았고, 편의점은 4900원짜리 미니 케이크로 맞불을 놨다. 동일한 상품군에서 가격 차이는 100배에 달한다. 소비자는 중간 가격대 대신 가장 싼 선택 또는 가장 특별한 경험을 택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명품 매장을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 본점 에르메스 매장 전경. 사진 신세계 제공
신라호텔서울은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50만원짜리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 케이크를 선보였다. 국내 호텔 크리스마스 케이크 중 역대 최고가다. 이 케이크에는 블랙 트러플보다 3~4배 비싼 화이트 트러플이 사용됐다. 프랑스 최고급 디저트 와인인 샤토 디켐도 넣었다. 전량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완성까지 7일이 걸린다. 하루 최대 판매량은 3개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38만원짜리 케이크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35만원짜리 시그니처 케이크를 50개 한정으로 내놨다.

합리적인 가격과 인기 트렌드를 반영해 급속도로 성장한 무신사스탠다드 홍대점. 사진 무신사 제공
포시즌스 호텔 역시 30만원대 케이크를 출시했다.

호텔업계는 케이크를 디저트가 아닌 ‘연말 경험’으로 정의한다. 선물 수요도 크다. 가격보다 희소성과 스토리가 중요하다.

반면 편의점 업계는 1~2인 가구와 실속 소비층을 겨냥해 가격 장벽을 최대한 낮췄다. GS25는 4900원짜리 미니 케이크를 출시했다. 120g 소용량이다. 혼자 또는 둘이 즐기기에 적당하다. 예약 부담이 없다. 접근성이 강점이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소비의 ‘일상화’를 노린 전략이다.

이 같은 흐름은 명품 시장과 유통 플랫폼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 둔화로 고가 소비가 꺾일 것이란 전망과 달리, 최상위 명품 브랜드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견조했다.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최고급 브랜드는 한국 시장에서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갔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샤넬코리아 지난해 매출은 1조8446억원으로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1조7484억원으로 5.9% 늘었고, 에르메스코리아는 9643억원으로 21.0% 성장했다.

반면 명품 시장 전체가 호황을 누린 것은 아니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9.6%, 27.4% 감소했다. 프라다코리아는 적자 전환했고, 페라가모코리아의 매출은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펜디코리아 매출도 20% 넘게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소비 자체가 줄었다기보다, 브랜드 간 쏠림 현상이 심화된 것”이라며 “소비자는 ‘아무 명품’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명품’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는 이 같은 변화를 빠르게 읽고 있다. 단순 판매 공간에서 벗어나 초고가 경험형 리테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대표 사례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하우스 오브 신세계’다.

이 곳은 VVIP 고객을 대상으로 명품 판매와 더불어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명 작가와 협업 전시가 상시 열리고, 전담 직원이 1대1로 고객을 응대한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상위 5% 고객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이들을 붙잡는 것이 곧 수익성 방어다. 초고가 마케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반대편에서는 초가성비 플랫폼이 소비를 흡수하고 있다. ‘올다무쿠’(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쿠팡)로 대표되는 가성비 채널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CJ올리브영 지난해 매출은 4조7935억원으로 전년대비 23.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5993억원으로 30.1% 늘었다. 아성다이소 역시 매출 3조9689억원, 영업이익 371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증가율은 40%를 넘었다.

무신사는 지난해 매출 1조2427억원으로 25% 성장했다. 영업이익 1028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쿠팡은 연결 기준 매출 38조2988억원을 기록하며 20% 넘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영업이익은 1조6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들 플랫폼은 공통점이 있다. 합리적인 가격, 빠른 회전, 높은 선택권이다. 여기에 쿠팡은 인공지능(AI)과 자동화 물류를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K뷰티와 K패션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발 저가 플래폼도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세다. 알리와 테무의 공세는 이미 체감 단계다. 생활용품 잡화 패션 소품 등에서는 “굳이 국내 플랫폼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1000원대 스마트폰 케이스, 2000원대 수납용품이 대표적이다.

핵심은 구조다. 중국 현지 제조사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D2C 모델을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제거했다. 여기에 무료 배송을 기본 옵션으로 깔았다. 과거 ‘싸지만 배송이 느리다’는 인식도 빠르게 허물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물류센터 확보와 함께 CJ대한통운 등 국내 택배사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상품은 5일 이내 배송이 일반화됐다. 당일·익일 배송 가능성도 거론된다. 테무 역시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물류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격 경쟁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국내 중소 셀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알리·테무는 더 이상 ‘해외 직구 플랫폼’이 아니라 국내 이커머스와 동일선상에서 경쟁하는 존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소비 양극화를 구조적 변화로 본다. 고금리·고물가 환경, 소득 격차 확대, 데이터 기반 개인화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싸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상품과 플랫폼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가격이냐 경험이냐 유통의 선택지는 명확해지고 있고 유통의 양극화는 이미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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