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미 ‘안보 광물 동맹’ 핵심축으로
11조원 미국 제련소 투자…트럼프 행정부 환영 속 한·미 경제안보 결속 강화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손잡고 추진하는 대규모 핵심광물 제련소 건설이 단순한 해외 투자를 넘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상징적 프로젝트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일제히 ‘획기적 딜’이라고 평가한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정치·경제적 맥락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테네시주에 대규모 핵심광물 제련소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해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과 상업 생산에 돌입한다. 생산 품목은 아연·연·동 등 기금속과 은·금 같은 귀금속, 안티모니·갈륨·게르마늄 등 핵심광물을 포함해 총 13종이다.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는 설비투자 기준 약 10조원(66억 달러)이며, 운용자금과 금융비용을 포함하면 총 11조원(74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생산 확대분 중 일부에 대해 우선적 매수권한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 정부 “판도를 바꾸는 딜”
광물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미국 행정부는 이번 투자를 핵심광물 공급망 재편의 분기점으로 평가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이라며 항공우주·국방·반도체·AI·양자컴퓨팅 등 전략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강조했다. 스티브 파인버그 미 국방부 부장관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국 내 아연 제련소를 짓는 결정”이라며, 국방부가 14억 달러를 조건부로 투자하는 점을 들어 국가안보 프로젝트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투자촉진국과 연방 의회 인사들 역시 이번 투자를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광물 리쇼어링’의 핵심 축으로 규정했다. 테네시주에 75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점도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투자 관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고려아연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기존 제련 중심 기업에서 벗어나 미국 국가안보 공급망에 직접 편입된 ‘전략 파트너’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티모니·갈륨·게르마늄 등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광물로, 미국 내 안정적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대규모 자본 투입 부담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정부와의 장기 계약, 우선 매수권 구조가 수익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 민간 투자가 아니라 국방·안보 예산이 연계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정책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치적 함의…한·미 동맹, 군사에서 경제안보로 확장
정치적으로 이번 투자는 한·미 동맹의 성격이 군사 협력을 넘어 경제안보 동맹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광물은 무기체계, 반도체, 첨단산업 전반의 기초 원료로, 공급망을 장악하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미국 정부가 외국 기업인 고려아연과 공동 투자에 나선 것은 ‘동맹국 중심 공급망’ 전략의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다.
빌 해거티 미 상원의원이 “지정학적 승리”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핵심광물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한국은 미국 시장과 안보 체계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은 ‘광물판 IRA’로 해석한다. 생산 거점의 미국 이전, 동맹국 중심 협력, 정부의 직접 개입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졌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는 향후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투자는 기업 차원의 해외 진출을 넘어, 국가 전략과 맞물린 경제안보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고려아연의 선택이 향후 다른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