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6년을 ‘한글의 해’로

2025-12-23 13:00:01 게재

2026년은 가히 ‘한글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신 지 580돌이 되는 해이자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지키기 위해 한글날을 기념한 지 100돌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언어생활을 위해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훈맹정음, 즉 한글점자가 세상에 발표된 지도 100돌이 된다. 한글의 창제와 확산, 포용의 역사가 겹치는 상징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글의 위상은 극적으로 변화해 왔다. 일제 강점기라는 소멸의 위기를 극복한 한글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핵심 동력이었다. 해방 이후 짧은 기간에 문해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지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할 수 있었던 건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한글의 힘으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함께 성취한 나라가 되었고,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적 영향력까지 갖추게 됐다.

오늘날 한글은 더 이상 우리만의 문자가 아니다. 세계인이 함께 배우고 사용하는 글자로 그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현재 87개 국가, 252개 세종학당에서 약 13만명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있으며, 수강 대기자는 1만명을 넘어선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국가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가 세종학당을 2030년까지 350개로 확대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는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글자로 지평 넓혀

국립한글박물관은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2026년을 맞아 한글에 담긴 애민과 창조 정신,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 축적되어 온 언어 문화를 조명하는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세종대왕 나신 날(5월), 한글날(10월), 점자의 날(11월)을 계기로 국내외 기획특별전, 학술 및 문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는 한글을 과거의 유산으로만 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문화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우리 말과 글이 앞으로도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 새해에 모두가 함께 실천했으면 하는 과제가 있다.

첫째, 바르고 쉬운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는 일이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언어는 국민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께서 부처 업무보고 과정에서 어려운 외래어나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 말과 글의 사용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방향성을 보여 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오늘의 한글 위상을 만들어 낸 선각자들의 업적을 기억하는 일이다. ‘한글’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고 우리 말글 연구의 기틀을 세운 주시경 선생,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호머 헐버트 선생, 초중등 교과서를 한글 전용으로 만든 최현배 선생 등 한글의 생명력이 이어지도록 헌신한 선조들과 외국인의 노력을 기려야 한다.

셋째, 세계인의 말과 글로 자리 잡아 가는 한국어의 변화를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말과 글이 세계화되면서 각 나라의 언어적·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다양한 사용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우리 말과 글의 약화가 아니라 생명력이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어의 변화 포용하는 자세 필요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작은 실천도 의미 있다. 매주 한글을 주제로 한 노래나 시, 좋은 글귀를 찾아 손으로 베껴 쓰는 일이다. 작고 단순한 실천이지만 한글의 가치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26년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한글의 해’로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강정원 국립한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