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도의 입시전쟁이 한국 교육에 던지는 질문

2025-12-26 13:00:03 게재

매년 12월이 되면 한국 사회는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에 시선을 집중한다. 성적 발표와 함께 올해 수능의 난이도가 적절했는지, 변별력은 충분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된다. 최근에는 재벌가 자제의 우수한 성적이 화제가 되며 여전히 ‘누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는 한국 교육의 민감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교육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적 담론의 중심에 서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치열한 교육열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다.

인도의 명문 공과대학 인도공과대학(IIT)에 입학하기 위한 공동입학시험(JEE)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매년 수백만명의 학생이 응시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극소수다. 특히 상위 100위 이내에 드는 수험생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의 자부심이 된다. 이들의 얼굴과 이름은 일간지와 대형 입시학원 광고에 실리고 ‘전국 몇 위’라는 숫자는 곧 하나의 성공의 상징이 된다.

인도와 한국 입시전쟁 차이는 계층 이동 여부

이러한 인도의 입시전쟁과도 같은 현실은 넷플릭스 드라마 ‘코타 팩토리’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졌다. 필자는 2021년 인도 대사로 부임한 직후 인도 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 시리즈를 시청했다. 흑백 화면으로 담아낸 작은 도시 코타는 전국에서 몰려든 수험생들로 가득한 ‘입시의 도시’였다.

학생들은 가족과 떨어져 합숙하며 하루 10시간이 넘는 공부를 이어가고 모의고사 성적 하나에 울고 웃는다. 교실과 기숙사, 학원과 시험지를 오가는 반복된 일상은 한국의 입시 풍경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도 분명하다. ‘코타 팩토리’가 보여주는 인도 입시의 본질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교육이 여전히 계층 이동의 강력한 통로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회적 믿음이다. IIT를 졸업한 인재들은 글로벌 IT 기업과 스타트업, 학계와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며 개인의 삶은 물론 가족의 미래까지 바꾼다.

인도 사회에서 교육은 아직도 “노력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집단적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교육은 어떠한가?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수능 난이도를 둘러싼 논쟁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은 시험의 공정성뿐 아니라 교육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명문대 진학이 안정된 미래를 보장한다는 공식은 흔들리고, 사교육 부담은 커지며,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기존 격차를 재생산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 지점에서 인도의 교육열은 한국에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인도의 젊은이들은 이토록 극한의 경쟁을 감내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교육이 여전히 국가 성장과 개인 성공을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경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교육을 사회정책이자 산업정책, 나아가 국가 전략의 하나로 다룬다. 인구 세계 1위 국가로서 방대한 인적 자원 가운데 상위 인재를 선별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체계는 인도의 기술력과 혁신 역량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다.

한국과 인도는 모두 교육을 통해 성장한 나라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인도는 “이 교육열을 어떻게 국가 경쟁력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묻는 반면, 한국은 “교육이 여전히 사회를 전진시키는 힘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인도를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창은 바로 이 치열한 입시현장에 있다. ‘코타 팩토리’ 속 학생의 고단한 하루는 한국 수험생의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책상 너머에 펼쳐질 미래의 스케일은 인도의 잠재력을 다시 보게 만든다.

한국 교육은 여전히 ‘공정한 사다리’인가

인도를 단순한 인구대국이나 신흥시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교육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온 사회로 이해할 때 우리는 인도의 진짜 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한국 교육이 마주한 질문도 보다 분명해진다.

과연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노력과 성취를 연결하는 공정한 사다리로 작동하고 있는가? 시험의 난이도와 변별력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교육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사회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충분한가? 나아가 한국 사회는 다음 세대에게 “공부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여전히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가? 인도의 입시전쟁은 결국 한국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장재복 전 주인도대사 씨티넷(CityNet) 사무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