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희 변호사의 이혼소송 이야기 (8)

‘황혼이혼’ 긴 세월의 끝에서 마주한 선택

2025-12-29 13:00:01 게재

이혼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소송이 유난히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앞서 다른 기고에서 언급했듯이 미성년 자녀 친권, 양육권과 관련된 쟁점이 있거나, 황혼이혼인 경우가 그렇다.

황혼이혼 사건에서 법원은 통상적으로 가사조사 및 부부심리상담을 진행한다. 특히 성인이 된 자녀까지 가사조사에 참여시켜 부부의 오랜 결혼 생활에서 있어 왔던 문제점들을 면밀히 파악한다. 가사조사 및 부부심리상담을 모두 마친 후에도 법원은 다시 한 번 당사자들의 이혼 의지를 확인하곤 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경험한 황혼이혼 사건들은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거나 혼외자가 존재하는 경우다. 흥미롭게도 단순한 부정행위만으로는 이혼까지 결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혼외자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십 년을 함께한 배우자의 이중생활이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둘째 시부모 봉양과 상속 문제가 얽힌 경우다. 결혼 생활 내내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시부모의 병수발까지 다한 후, 막상 시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때가 되자 배우자가 단독 명의로 상속받는 상황이다. 이때 느끼는 배신감은 단순한 금전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의 헌신과 희생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셋째 성인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문제로 인한 이혼이다. 그동안 장남의 사업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고, 매번 장남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반복하며 자금을 받아갔다. 이제 배우자는 더 이상의 지원을 거부한다. 이에 일부 의뢰인은 이혼을 통해 재산분할금을 확보함으로써 자녀를 지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황혼이혼소송은 다른 이혼소송에 비해 매우 쉽게 소 취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당사자 중 한 명이 아프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수십 년간 가정공동체를 지속해 온 동료의식이 발현되는 것이다. 법정에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던 부부가, 배우자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는 조용히 소송을 취하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지난 주말, 결혼식에 다녀왔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식 초대는 줄어들지만, 간혹 잡히는 결혼식에는 꼭 참석하려 한다. 새로운 부부의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나는 문득 황혼이혼 의뢰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결혼은 아름다운 시작이지만, 그 여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수십 년의 세월이 쌓이면서 작은 상처들이 켜켜이 쌓이고, 어느 순간 그것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황혼이혼 사건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혼이 단순히 법적 관계의 해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동반자와의 이별이며, 때로는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황혼이혼은 누구에게나 쉬운 결정이 아니다. 법원도, 변호사도 그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신중하게, 더욱 세심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노주희

법무법인 새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