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선거에서 ‘이겼다’는 말에 대해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대선에서 이겼다”는 표현이다. 우리가 이겼는데 왜 상대에게 양보해야 하느냐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야당 역시 “대선에서 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이 말이 자꾸 거슬린다. 선거를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정치 세력 간 승부로만 받아들이는 듯해서다. 민심과 반하는 선거결과란 존재할 수 없다. 민심이 모여 선거 결과를 만든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현재 정치권 행태는 마치 국민과의 대결에서 이긴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지금 우리 사회의 민의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으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이겼다” “졌다”는 말만 남는다면 선거를 권력쟁취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단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단견은 오만으로 이어진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으로 ‘경쟁’보다 ‘포용’을 강조했다. 다수의 선택은 소수의 배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집권 여당은 다수 의석을 무기 삼아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고 강성 지지층 추종에 여념이 없다. 제1야당은 상식과 민주주의의 기본을 외면한 채 극단적 주장에 기대고 있다.
선거에서 ‘이겼다’는 자의식이 강해질수록 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정치인의 머리와 가슴에서 국민이 사라질 때 정치는 이익집단의 이해 관철을 위한 투쟁에 불과하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 되고 반대 의견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 정도로 취급된다.
문제는 그 투쟁의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바꾸는 권한이 모두 정치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만큼은 결과를 놓고 특정 정치집단이 이기고 지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선거는 국민에게 선택받는 과정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서울시장 선거판은 정책과 성과를 놓고 경쟁하는 쪽으로 흐르는 듯하다. 강성 지지층에 기대 중도를 내던진 인물이 아니라 일을 통해 평가받으려는 후보들이 여야 모두 수위권에 거론된다.
‘생태탕’ ‘명태탕’ 같은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세계적 도시 서울의 나아갈 길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양극화를 줄이고 고립과 소외를 줄일 방법을 놓고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다. 그 토론의 결과로 방향이 만들어지고, 그 방향에 시민의 뜻이 모이는 선거. 그래서 “상대를 이겼다”는 말 대신 “우리의 정책과 방향이 시민들에게 선택받았다”는 말이 남는 선거. 오만과 단견이 아닌 책임과 포용이 정치의 언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