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AI가 에너지시장 판 바꿔

2025-12-31 13:00:01 게재

2025년은 세계 에너지질서 대격변 시기

미국이 주도해 전통 에너지원으로 회귀

AI 데이터센터의 공습, 전력망 병목 심화

2025년 세계 에너지정책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에너지안보를 꼽을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도 중요하지만 ‘당장 꺼지지 않는 전기’를 확보하는 게 정책의 우선순위가 된 분위기다.

31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5년 세계 에너지정책 이슈와 단기전망’ 보고서에서△미국의 전통에너지로의 회귀 △기후변화 국제협력 동력 약화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에너지수급 변화 △전력계통망 병목 등 4가지를 올해 핫이슈로 꼽았다.

◆기후변화 협력 동력 약화 ‘각자도생’ = 2025년 세계 에너지 정책의 가장 강력한 변수는 미국의 행보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취임 당일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어 “미국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석유·천연가스를 충분히 생산해 에너지가격을 낮추고, 다시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기후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한 청정에너지 자금집행을 멈췄다. 화석연료 개발에 대한 인허가 절차 간소화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프로젝트 승인 재개를 통해 ‘에너지 지배권’ 확보에 나섰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하고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4배로 확대하는 ‘원자력 르네상스’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해온 우라늄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파리협정 재탈퇴를 선언했다. “인위적인 요인때문에 기후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민 4000만명 이상이 빈곤하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가장 큰 근심이 기후변화인가. 기후변화협정은 미국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지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후 산유국들의 화석연료 퇴출 반대 행보까지 겹쳐 기후변화 국제 협력은 급격히 위축되며 ‘각자도생’ 움직임을 보였다. EU는 2040년 기후 목표(1990년대비 90% 감축)를 유지하면서도 역내 산업 경쟁력 보호를 위해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조치를 완화했다.

세계 에너지시장은 기후대응이 중장기 과제로 밀리고, 단기적으로 전기·연료 확보와 산업경쟁력 확보가 정책결정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당장의 수급안정위해 LNG 의존도 커져 = 에너지 수요측면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약 2.3배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 수요 증가분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범용서버보다 전력소비가 월등히 높은 ‘가속서버’가 연평균 30%씩 성장하며 수요를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에 따라 2030년 이전까지 미국은 가스발전을, 중국은 석탄발전을 데이터센터 핵심 전력공급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속에서도 당장의 AI 전력 수요를 채우기 위해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폭증하는 전력수요 영향으로 이를 전달할 전력 계통망(그리드)은 병목현상이 심화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전체 발전용량의 2배에 가까운 2300GW 규모의 발전 프로젝트가 계통 접속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다. 유럽 역시 1700GW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병목 현상에 가로막혀 있다.

인프라 노후화와 투자 부족, 변압기 공급 지연(수요가 건설의 물리적 시간 차이) 등이 겹치며 전력망 확충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증가(소비자와 원거리 입지로 계통 확충 수요 증대)와 AI 데이터센터 등 전력화 확대도 주 요인이다. 이에 미국은 선착순 심사를 탈피해 상업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우선 승인하고, 유럽은 6개월 내 미결정 시 자동 승인하는 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올해 세계 에너지시장은 공급망 위험과 무역 규제가 교차하는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력망 병목현상과 미국-중국간 핵심광물 공급망 지배력 경쟁은 새해에도 지속될 것”이라며 “에너지안보를 위해 중·단기적으로 LNG 역할이 불가피하며, 기후대응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 탄소 포집·저장(CCUS) 등 에너지 신기술투자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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