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을 넘어 자치 생태계로 키우자
2025년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액이 1515억원을 돌파했다. 제도 시행 첫 해인 2023년 651억원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역대 최대 실적’이라 자평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숫자가 지역소멸 위기를 막고 진정한 지역 활력을 되찾는 신호탄이 될 수 있는가?
139만건의 기부, 70% 증가라는 양적 성장은 분명 고무적이다. 특히 산청·울주·안동 등 산불을 겪은 특별재난지역 기부가 전년 대비 2.3배 증가한 것은 위기 속에서 발현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3040세대가 전체 기부의 58%를 차지한 점도 제도 안착과 성장 잠재력에 긍정적 시그널이다.
하지만 전체 기부의 98%가 10만원 이하에 집중된 현상은 세액공제라는 인센티브가 핵심 동기임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모금 실적 격차다. 최고로 모금한 제주가 100억원을 돌파한 반면, 일부 지자체는 3억원대에 그쳤다. 단체장이나 담당 공무원의 관심이 높은 지역에서는 경쟁력 있는 답례품이나 지정기부 활성화로 기부가 증가하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낮은 실적을 보인다.
제도 개선, 판을 키워야 흐름이 바뀐다
2026년은 제도적 확장의 원년이다. 올해부터 10만원 초과 20만원 이하 구간의 세액공제율이 16.5%에서 44%로 상향돼 20만원을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을 합쳐 20만원을 100% 돌려받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중앙정부는 전액 공제구간을 3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개인 모금 상한액(연 2000만원)을 폐지하며, 법인기부를 허용해 기업의 지역사회 공헌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특별재난지역에만 적용되는 33% 세액공제를 소멸위험지역으로 확대하는 것도 지역격차 해소의 실질적 방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도개선을 넘어선 관계의 재구성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단순히 ‘돈을 모으는 제도’로 볼 것이 아니라, 기부자-지자체-주민-생산자-민간지원조직이 연결되는 새로운 협력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316억원에 달하는 답례품 판매액은 이미 지역경제와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이 생태계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분권자치와 균형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지자체는 단순히 기부금을 받아 쓰는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 생태계의 설계자이자 촉진자로 거듭나야 한다.
구체적으로 지자체는 기부자에게 지역 변화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주민자치회와 협력해 실질적인 지정기부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로컬 생산자와 연계해 가치 있는 답례품을 개발하고, 청년과 귀촌인을 연결해 새로운 지역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부금으로 청년 창업 공간을 조성하고, 그곳에서 탄생한 로컬 브랜드가 답례품이 되며, 이를 받은 기부자가 다시 지역 팬으로 전환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또는 지역활성화 지정기부 사업에 기부자가 기부하고, 그 진행 경과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확인하며, 완성된 사업에 초대받아 주민과 교류하는 경험을 설계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기부는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지속적 관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생태계적 접근은 중앙정부 의존적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가 스스로 자원을 동원하고 관계를 설계하며 혁신을 실험하는 진정한 자치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다. 고향사랑기부제가 단지 재정 보완책이 아니라, 분권시대 지자체의 새로운 지역활성화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연결망의 심화 확장으로
모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이 단순히 지방재정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협력생태계를 통해 도시와 농촌, 기부자와 주민, 청년과 어르신이 다시 연결되는 관계의 재구성으로 이어지느냐다. 2026년 고향사랑기부제가 분권자치의 새로운 장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