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AI는 승산 있는 게임”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움직이는 실체’와 ‘제조 공정’ 데이터는 강력한 무기
현대자동차그룹이 2026년을 ‘산업전환의 흐름을 주도하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해’로 규정하고, 조직 체질과 생태계를 동시에 바꾸는 ‘속도전’을 예고했다.
올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경기 둔화, 지정학적 갈등 등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리더는 숫자만 보지말고 현장을 방문하라"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5일 전 세계 임직원에게 공유한 신년회 영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빠르고 명확한 의사소통,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민첩한 의사결정”이라며 관행을 깨는 실행력을 주문했다. AI가 촉발한 산업 전환기에 “우리에게 더 큰 성장 기회가 있다”고도 단언했다.
올해 신년회는 정 회장의 새해 메시지에 이어 주요 경영진이 참여하는 좌담회 형식으로 구성됐다. 사전 녹화 영상을 이메일 등을 통해 전 세계 임직원에게 전달했다.
좌담회에는 장재훈 부회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 현대차그룹의 루크 동커볼케 사장, 성 김 사장, 만프레드 하러 사장, 김혜인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핵심 키워드는 AI·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로보틱스였다.
정 회장은 새해 메시지에서 △고객 관점의 성찰에서 비롯된 체질 개선 △본질을 꿰뚫는 명확한 상황 인식과 민첩한 의사결정 △공급 생태계 동반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 확대 △다양한 파트너와의 과감한 협력으로 생태계 확장 △산업과 제품의 새로운 기준 선도 등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여건이 어려워지고 경쟁이 치열해질 때 우리를 지켜줄 가장 큰 버팀목은 깊은 성찰에서 비롯되는 체질 개선”이라며 “제품 기획·개발 과정의 타협 여부, 고객 시각 반영 여부, 품질에 대한 떳떳함을 스스로 묻고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의사결정 방식도 바꾸라고 했다. “리더들은 숫자와 자료만 보는데 머물지 말고, 모니터 앞을 벗어나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을 통해 상황의 본질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보고는 ‘자기 생각과 결론’이 담겨 적시 적소에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파트너와 과감한 협력 필요 = 정 회장은 내부 체질을 다져도 ‘혼자’로는 한계가 있다고 못 박았다. “공급 생태계의 경쟁력이 곧 경쟁력”이라며 동반자 지원과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동시에 AI로 경쟁 방식이 바뀌는 전환기에는 “다양한 파트너들과 과감한 협력”으로 생태계를 넓히라고 당부했다.
그는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수백조원 단위의 투자로 우위를 선점해온 데 비해 우리가 확보한 역량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현대차그룹의 강점으로 ‘피지컬(Physical) 데이터’를 꼽았다. “자동차, 로봇과 같은 ‘움직이는 실체’와 ‘제조 공정’ 데이터의 가치는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라며 “데이터와 자본, 제조 역량을 갖춘 현대차그룹에게 AI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업 진화의 원동력”으로 삼아 “조직 내부의 생명력으로 체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재차 강조했다.
◆연내 라스베이거스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 상용화 = 좌담회에서는 SDV와 자율주행, 로보틱스, 수소 등 미래 모빌리티 의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장재훈 부회장은 SDV 전환을 두고 “현대차그룹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일”이라며 “타협할 수 없고 변함없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은 2023년부터 아이오닉5 로보택시 실차 테스트로 데이터를 축적해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올해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로보틱스는 보스턴다이나믹스와의 협업을 축으로 하드웨어와 피지컬 AI를 함께 고도화하고, 제조 현장 경험을 결합해 ‘현장 최적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간다는 구상이다. 공장과 유사한 조건의 로봇 데이터 수집·검증 시설을 구축해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스트레치·스팟은 내부와 외부 현장에서 사용 데이터를 쌓으며 성능·안전성·비용 경쟁력을 높이고 있고,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위험 환경과 단순 노동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기대한다.
수소에 대해 장 부회장은 “재생에너지를 보완하고 효율을 높이는 에너지 캐리어이자 저장 수단”이라며, 모빌리티를 넘어 생산·저장·산업 활용까지 전 밸류체인을 선도한다고 말했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인터페이스 설계를 표준화하고, 오픈소스 생태계에 참여해서 글로벌 SDV 표준 확산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국내 중장기 투자와 관련해 “외형 확대가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26~2030년 국내에 125조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는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며 “부문별 변화 속도의 격차를 줄이고,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빨리 수면 위로 올려 함께 해결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