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입찰 담합’ 6개 제약사 무죄 확정
1심 벌금→2심 무죄→대법 무죄
“질병본부 압박에 신속입찰 목적”
공정위 과징금 불복소송선 패소
정부가 발주한 백신(국가예방접종사업·NIP) 입찰에서 백신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형 제약·유통사들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애초 입찰에서 실질적 경쟁이 없었고, ‘들러리 업체’를 세운 건 오히려 당국의 종용 등으로 신속히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SK디스커버리·보령바이오파마·녹십자·유한양행·광동제약·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제약·유통사와 임직원 7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들은 2016년~2018년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등의 입찰 과정에서 사전에 낙찰가를 공모한 후 다른 발주처를 들러리 세우는 방식으로 낙찰가 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2020년 8월 기소됐다.
1심은 녹십자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각각 벌금 7000만원, 보령바이오파마와 유한양행에는 벌금 5000만원, SK디스커버리와 광동제약에는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에 사용되는 입찰 절차의 공정을 해하는 것으로 국가재정 낭비와 위기관리시스템에 위협을 가할 우려가 있는 공익에 반하는 범죄”라며 “조직적, 지속적 담합을 통해 이루어졌고 범행도 수차례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은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각 입찰은 구조적 특수성으로 인해 공동판매사와 나머지 업체 간에 실질적인 경쟁 관계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들러리 행위로 인해 경쟁 제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가격 등 거래조건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존재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한 백신 제품별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려면 제조사로부터 공급확약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런데 백신 유통업체가 다국적 제약사(제조사)와 공동판매 계약을 맺고 유통해온 만큼 사실상 공동판매사만이 확약서를 받을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공정한 자유경쟁을 통한 적정한 가격 형성’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입찰이라는 것이다.
2심은 “질본 담당자들 또한 조달청 승인이 있었다면 수의계약으로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질적 경쟁에 관한 인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 진행에서 제조사뿐 아니라 공동판매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도 인식을 같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촉박한 일정을 맞추려고 질본 담당자들이 공동판매사에 빠른 낙찰을 종용·압박했고, 그 와중에 ‘들러리를 세워서라도 입찰을 마무리하라’는 의사가 가감 없이 표시되기도 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들러리를 세운 행위는 입찰에서 실질적 경쟁을 배제해 공동판매사가 낙찰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NIP사업 백신 적시 공급의 필요성, 그에 관한 질본의 압박 또는 종용으로 신속하게 입찰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 근본 배경 및 인식”이라고 했다.
검찰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하는 증명력이 있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유죄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재확인했다.
한편 백신 입찰 담합과 관련해 제약·유통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낸 행정소송에선 형사사건과 다른 결론이 나왔다.
공정위는 2023년 7월 GSK와 6개 백신 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32개 사업자의 입찰 담합에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했다.
이후 녹십자와 유한양행, 광동제약 등 제약사들이 잇달아 소송을 냈으나 줄줄이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이들의 행위가 부당한 공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일부는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