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구속영장 청구
홈플러스 전단채 의혹, 형사 책임 분수령
사기적 부정거래 쟁점에 회생안도 시험대 … 판매 증권사 책임까지 번질 수도
‘홈플러스 사태’를 둘러싼 수사가 중대한 분기점에 들어섰다. 검찰이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홈플러스 매입채무유동화 전자단기채권(ABSTB, 전단채) 발행 과정에서의 형사 책임을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가 회사 사정이 악화되고 신용도가 떨어질 가능성을 알면서도 단기 채권을 판매한 뒤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고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3부(직무대리 김봉진 부장검사)는 7일 김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광일 MBK 부회장 겸 홈플러스 대표, 김정환 MBK 부사장, 이성진 홈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도 같은 혐의와 함께 회계 관련 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이 보는 사건의 흐름은 회사 위험을 인지한 뒤 단기 채권을 집중적으로 발행했고, 이후 곧바로 회생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이 2023년 말부터 적자 확대와 자금 사정 악화를 보고받았고, 지난해 2월 중순에는 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2월 25일 820억원 규모의 전단채를 발행해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홈플러스는 신용평가사가 지난해 2월 28일 신용등급을 낮추자 나흘 뒤인 3월 4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회생 절차가 시작된 이후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은 최하 수준으로 떨어졌고, 투자금 회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개인 투자자 피해만 2000억원 넘어 = 피해 규모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3일 기준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전자단기사채, 단기사채 판매 잔액은 모두 5949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개인 투자자에게 팔린 금액만 2075억원(676건)으로 집계됐다. 일반 기업에 판매된 단기 채권도 3327억원(192건)에 이르며, 중소기업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개인에 그치지 않고 기업으로까지 확산된 셈이다.
특히 신용등급 하락과 회생 신청을 앞둔 한 달 동안 발행된 단기 채권만 1807억원에 달했다. 이 중 대부분은 전단채였고, 기업어음과 일반 단기사채도 함께 발행됐다.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날에도 전단채가 발행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단순한 경영 실패인지, 투자자를 속인 거래인지다. 경영 실패는 시장 상황 악화나 판단 착오로 회사 사정이 나빠진 경우를 말한다. 반면 사기적 거래는 회사의 위험을 알고도 이를 숨기거나 축소 설명해 투자 판단을 흐리게 한 경우다.
법조계는 형사 재판에서 사기적 거래로 판단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의로 속였다는 점이 인정되면,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기 훨씬 쉬워진다. 책임 대상도 홈플러스 법인에 그치지 않고 MBK와 경영진 개인까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판매사·증권사 책임으로 번질 가능성 = 수사가 진전되면 책임 범위가 채권 발행사를 넘어 판매에 관여한 증권사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단채가 증권사를 통해 개인에게 판매된 만큼, 판매 과정에서 위험을 제대로 설명했는지, 즉 불완전판매 여부가 쟁점이다.
법은 금융상품 판매 시 주요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이나 회생 가능성을 알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전단채를 ‘단기·저위험 상품’처럼 판매했다면 불완전판매로 판단될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위험 인지나 정보 은폐가 인정될 경우, 이는 증권사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경우 책임이 발행사와 경영진에 그치지 않고 판매 증권사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들 “지금 당장 보호 필요” = 전단채 피해자들은 회생 절차가 길어지면서 생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의환 홈플러스 물품구매전자단기사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면서도 전자단기사채를 안전한 상품처럼 판매했다면 이는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라 기망이며, 경영 실패와 사기적 거래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후 자금과 치료비까지 맡겼던 피해자들이 회생 절차 이후 생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형사 처벌과 별개로 법원과 정부가 회생 절차 안에서 즉각적인 피해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속영장 청구로 형사 책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홈플러스 회생계획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법원이 회생계획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와 대주주 책임 분담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이번 회생이 기업 정상화로 평가될지, 책임을 피하기 위한 구조조정으로 비칠지에 대한 판단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8일 입장문을 통해 “회생을 위한 그간의 각고의 노력을 외면하는 결정일 뿐 아니라 회사의 마지막 기회마저 위태롭게 하는 매우 심각한 조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홈플러스는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전단채는 신영증권이 별도의 신용평가를 거쳐 독자적으로 발행·판매한 금융상품”이라며 “홈플러스는 발행이나 재판매 거래에 어떠한 방식으로도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주주사 역시 ABSTB 발행과 관련해 그 어떤 의사결정이나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며 “이러한 사실관계는 향후 법적 절차를 통해 명확히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다음 주 초 김 회장 등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할 예정이다. 그 결과는 홈플러스 회생 절차와 전단채 피해자 구제 논의의 방향을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장세풍·구본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