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북극이사회…미국·러시아, 규칙기반 북극협력 위협
전문가들 “한국도 어려움 직면 … 국제협력으로 기회 잡아야”
해양수산개발원 “한국, 북극항로 개척위한 대외 여건 마련해야”
북극권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1996년 9월 미국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캐나다 등 북극연안 8개국이 설립한 북극이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북극이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당시 의장국이던 러시아(2021년 5월 ~ 2023년 5월)가 주도하는 사업들을 다른 회원국들이 거부하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졌다.
비정상적으로 운영해 온 북극이사회는 미국이 덴마크자치령인 그린란드를 군사적 수단까지 배제하지 않고 확보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면서 덴마크를 포함 회원국들과 미국 사이마저 갈라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덴마크·그린란드 고위급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후 덴마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과 함께 그린란드에 병력을 급파하며 사실상의 ‘무력시위’에 나섰다.
덴마크는 지난해 5월부터 북극이사회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의장국은 회원국들이 2년마다 돌아가며 맡고 있다.
한국을 포함 중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등 13개국은 옵서버로 참여하며 북극이사회의 규칙에 기반한 국제협력을 강화해 왔지만 북극이사회의 미래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극 거버넌스의 핵심 관계자들은 한국이 국제협력을 강화하며 북극에서 활동기반을 넓혀갈 것을 조언하고 있다. 북극 거버넌스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오란 영 캘리포니아대 석좌명예교수와 매즈 크비스트 프레덱린션 북극경제이사회 사무국장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15일 발행한 ‘2026 해양수산전략리포트’에 특별기고를 통해 △북극 국제협력에서 한국의 역할 △북극경제권 참여를 위한 한국의 조건과 과제를 각각 제안했다.
북극은 한국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설정한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권 건설의 핵심 기반이다. 이날 KMI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개최한 ‘2026 해양수산 전망대회’에서도 김엄지 KMI 극지전략연구실장은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서도 △북극경제와의 연계성 강화 △국제규범·규제에 대응방안 마련 등 대외적 여건을 마련해 갈 것을 강조했다.
◆한국, 북극현안 해결에 주도적 역할해야 = 오란 영 교수는 한국이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와 첨단기술산업, 그리고 여러 중대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는 정치적 회복력을 갖춘 중견국으로서 글로벌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국제정치질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로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이사회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한국이 지금까지 북극 현안 문제에서 건설적으로 수행해 온 역할도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오란 영 교수는 북극 현안에서 한국이 구축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해운업 △수산업 △과학연구 △북극지역사회 역량강화 등과 관련된 현안에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운 분야의 경우, 한국은 극지해역에서 운항하는 선박활동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는 국제해사기구(IMO)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IMO는 2010년대 북극해운의 안전·환경보호를 규정한 ‘극지해역 운항선박 국제규정’(Polar Code) 채택을 주도했다. 한국 조선소들은 이에 맞춰 아크(Arc)-7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건조했고, 이 선박들은 현재 러시아 북극권 사베타항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LNG를 운송하고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현재 북극해운의 주요 현안은 블랙카본 매출 저감, 수중 소음 제한, 보다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추진 시스템 개발 등이다.
오란 영 교수는 “한국은 첨단 선박 설계·건조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국으로서 북극항로 해운의 상업적 역할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차세대 기술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북극의 수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2018년에 ‘중앙북극해 공해상 비규제 어업 방지협정’(CAOFA)을 체결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21년 협정 발효 후 첫 세 차례 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는데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 관련 협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일궈낸 주요한 성과로 평가됐다.
향후 과제는 올해 1월 발효되는 ‘국가관할권 이원지역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협정’을 이행하는 문제다. 한국은 북극해의 상업적 어업 발전 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한 해양보호구역(MAP) 설정 논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한국은 ‘태평양 북극그룹’같은 국제협의체에 적극 참여하며 극지연구 분야에서도 주요 주체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 특히 2029년 취항 예정인 차세대 연구용 쇄빙선(쇄빙연구선)이 주목받고 있다. 아라온호에 이어 두 번째로 취항하는 한국의 쇄빙연구선은 북극해양 현안을 연구하는 국제공동 연구팀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는 2030년 남북극 통합 극지학술대회 개최와 함께 한국이 차기 ‘세계 극지의 해’에서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오란 영 교수는 “북극연구프로그램을 활발히 지원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의 북극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중견국이 북극 현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북극지역 사회를 도울 기회에도 주목해야 한다. 북극지역은 기후변화로 해안침식 침수 영구동토층 해빙 등으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태풍 할롱이 알래스카 서부 지역을 강타하면서 피해가 컸다. 기후변화는북극의 소규모 원주민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들 공동체가모두 이주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첨단기술을 활용해 지역 인프라를 강화하는 식으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오란 영 교수는 “한국이 이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의무는 없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면 북극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북극에서 경쟁우위 갖춘 나라 = 매즈 크비스트 프레데릭센 북극경제이사회(AEC) 사무국장은 북극경제권 참여를 위한 한국의 조건과 과제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인 북극의 경제적 기회는 대부분 해양, 그리고 광범위한 ‘블루 이코노미’를 통해 이뤄진다고 분석하고, 한국은 △극한 환경의 북극해에서도 운항할 수 있는 선박을 건조하고 △해상물류허브로서 접근성이 뛰어나며 △수산물 소비의 주요 시장이고 △해양바이오 기술 분야에서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미 북극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만한 여건들을 충분히 보유한 국가라는 것이다.
조선 분야에서 한국은 북극해역에서 운항할 수 있는 LNG운반선과 셔틀탱커 등 쇄빙선과 빙해선(내빙선) 건조역량을 갖추고 있고, 북극권의 북유럽 기업들과 오랜 기간 협력해 왔다.
프레데릭센 국장은 “북극 해양 활동이 증가하고 인프라가 확충되는 것은 한국에게 큰 기회로 작용할 것”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북극지역 파트너와 협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해가 어려운 북극의 바다뿐만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현실도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며 “지리적 인문적 관점은 물론 정치적 민감성을 모두 아우르는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핵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극주민의 10%는 원주민이므로 북극에서 현지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춘 민간 전문가들과 협력도 필수라고 덧붙였다.
북극 역내는 물론 북태평양을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운송이 증가하면서 선박이동경로 추적,해빙 모니터링 등 블루 이코노미 기반의 정보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한국과 북극 파트너들 사이에 쌓은 협력사례들도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데릭센 국장은 “북극권 트롬쇠에 본사를 둔 KSAT는 제주도에 사업장을 운영 중인데, 현지 파트너들과 협력해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간 위성 모니터링을 제공한다”며 “이들은 북극 기후변화의 주요 요인인 메탄가스 배출원인을 탐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극항로 운항과 위성 모니터링은 수산업과도 직접 연결된다. 북극이사회 소속 북극해양환경보호(PAME) 실무그룹의 북극해운 보고서에 따르면 북극지역에서 운항하는 선박의 41%는 어선이다.
블루 이코노미 중에서도 수산물 수출은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북극권 국가들의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한국은 주요 수입국 중 하나다. 현재 노르웨이는 한국에 대서양연어와 고등어를 수출하고 알래스카는 명태와 광어를 공급한다. 그린란드산 새우도 한국시장에 수출된다.
수산업은 단순한 식량 공급을 넘어 바이오테크 및 신소재 산업으로 가치사슬이 확장되고 있다. 수산기업들은 예전에는 폐기했던 부산물을 가공해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프레데릭센 국장은 “한국은 화장품 바이오 제약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나라”라며 “이 분야에서 북극권과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열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극경제이사회는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한국이) 자원을 결합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자금을 확보하려면 북극지역 내부는 물론 국제적 차원에서도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