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공소기각’…내란 유죄 전망
‘체포방해’ 재판부, 공수처 내란 수사권·체포 “적법”
“계엄절차 위헌·위법” 판단 … 내란 재판 영향 주목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체포 방해 등 혐의 재판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서 앞으로 이어질 내란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재판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하고 비상계엄 절차에 위헌·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한 만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체포 방해 1심 선고는 그동안 윤 전 대통령측이 문제 삼아온 비상계엄 수사의 절차상 문제에 대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고 이에 근거한 검찰의 기소는 위법하므로 공소 기각돼야 한다는 윤 전 대통령측의 핵심 주장을 정면으로 배척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인) 피고인에게 헌법상 불소추특권이 있다고 해도 수사까지 제한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따라서 공수처는 피고인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범행에 대해 수사할 수 있고 ‘관련 범죄’로서 피고인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수처의 체포영장이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에서 발부돼 불법이라는 윤 전 대통령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의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범행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대통령실에서 이루어졌고, 공수처가 수사할 당시 피고인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에 거주했으므로 서울 용산구를 관할하는 서부지법에 형사소송법상 토지관할이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윤 전 대통령측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10조를 들어 경호처장의 승낙 없는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위법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재판부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조항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적 제한’에 관한 규정이라기보다는 ‘대상 또는 목적물’에 관한 규정으로 체포와 같은 대인적 강제 처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특히 형소법 제110조 2항을 근거로 “설령 경호처장의 승낙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더라도 피고인을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체포하는 것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공수처가 경호처장의 승낙 없이 영장집행에 나아간 것은 적법하다”고 적시했다.
형소법 제110조 2항에서는 ‘해당 장소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압수 또는 수색의)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영장에 적은 수색 장소는 대통령 관저뿐으로 관저 외곽 1정문부터 수색 장소에 이르기까지 영장 기재 이외 지역을 지나간 것은 위법하다는 윤 전 대통령측 주장도 배척했다. 수색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를 수색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계엄 자체의 위헌·위법성에 대해선 명시적인 법적 판단을 내놓지 않았지만 계엄 선포에 이르는 절차적 하자의 위헌·위법성은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는 전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고 국민 기본권을 다각도에서 침해할 위험성이 매우 크므로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에 관해 전례 없이 자신이 특정한 일부 국무위원에만 국무회의 소집을 통보해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등 헌법과 계엄법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윤 전 대통령측 주장과 배치되는 판단이다.
윤 전 대통령의 8개 재판 중 가장 먼저 선고가 내려진 이번 재판에서 공수처 수사권의 적법성과 비상계엄 선포 절차의 위헌·위법성이 인정되면서 향후 내란 관련 재판에서도 이같은 기조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겠지만 동일한 헌법과 계엄법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당장 오는 21일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다.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않고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해 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선포문에 서명한 뒤 이를 폐기토록 한 혐의,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문을 인지 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허위 증언한 혐의도 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11월 결심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체포방해 사건 재판부가 비상계엄 국무회의의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하고, 사후 계엄선포문 작성 혐의도 유죄로 판단함에 따라 한 전 총리 역시 처벌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1심 선고 기일은 다음달 19일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