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채, 갖은 악재에도 승승장구
연준 독립성 시비·재정악화 속 국채가격 강세 … 달러수요 구조가 버팀목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시장이 오히려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재정악화라는 ‘악재’가 쌓이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미 국채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1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채권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안고 있다. 재정적자 급증과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그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에 기준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본부 리모델링 비용과 관련해 연방수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서명한 감세법안은 전쟁·팬데믹·금융위기를 제외하면 사상 최대 수준의 재정적자를 고착화했다.
그럼에도 시장 반응은 정반대다. 미국 국채금리는 1년 전보다 낮아졌고, 하락폭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컸다. 이른바 ‘채권 자경단’이 미국을 문제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켄트 스메터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미국의 부채문제가 통제되고 있다면 장기금리는 1% 이상 더 낮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지표들도 비슷한 신호를 보낸다. 미국 국채의 ‘편의수익(convenience yield)’은 역사적 평균 범위 안에 있으며 최근 오히려 축소됐다. 편의수익이란 투자자가 미국 국채를 보유함으로써 얻는 ‘이자 외의 추가 가치’를 뜻한다. 국채를 만기까지 들고 가며 받는 이자와 원금 상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안전성과 활용성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보너스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빈 브룩스 선임연구원은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보유하기 위해 요구하는 추가 프리미엄이 과도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채권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첫번째 이유로 미국의 ‘상대적 우위’를 꼽았다. 일본은 막대한 국가채무에 짓눌려 있고, 프랑스는 장기 재정위기에 빠져 있으며, 영국은 저성장·고세금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부채 부담이 크지만 경제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 규모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역시 미 국채에 대한 신뢰를 지탱하는 요인이다.
두번째는 조금 덜 낙관적인 해석이다. 채권가격 상승은 성장둔화와 금리인하 기대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조하지만 관세와 대규모 이민 억제 등 성장에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설명이 맞는지는 2026년 감세 효과가 본격화돼 성장률이 다시 반등할 때 판가름 날 전망이다.
세번째 가능성은 시장의 오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관세, 이민, 연준 독립성 훼손 등 트럼프 대통령의 급진적 정책 구상이 성장과 물가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시장이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1~2022년 인플레이션 급등 당시에도 시장은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늦게 반영한 전례가 있다. 한 번 인식이 바뀌면 조정이 급격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다.
결국 미국 국채의 ‘승승장구’는 상대적 매력, 달러의 지위, 그리고 성장둔화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다만 정치적 위험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이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