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비 소득공제’ 예술 세계로 관객 이끄는 초대장
막이 오르기 직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연출가는 관객의 숨소리를 듣는다. 무대 위 배우의 떨림과 객석의 기대감이 만나는 그 찰나의 정적은 연출가에게 가장 고독하면서도 황홀한 시간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 간 연출가로서 마주하는 객석의 빈자리는 단순히 ‘흥행 실패’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다. 무대는 관객이 존재할 때 비로소 완성되지만 치솟는 물가와 경제적 부담 앞에서 공연장은 누군가에게 여전히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먼 곳’이기 때문이다.연출가는 늘 무대 위의 미학을 고민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관객을 이 세계로 초대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턱 앞에 선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비 소득공제’는 단순한 세제혜택을 넘어 연출가가 설계한 예술의 세계로 관객을 이끄는 가장 현실적이고 다정한 초대장이다. 도서 공연관람료 등에 적용되는 이 제도는 티켓 예매창 앞에서 관객이 겪는 마지막 망설임을 확신으로 돌려세우는 힘이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관람의 ‘일상화’다. 문화비 소득공제는 공연을 특별한 날에만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연말정산을 통해 되돌려 받는 정당한 ‘문화적 권리’로 재정의한다. 관객이 “이번 달엔 소득공제도 되니 연극 한편 더 볼까?”라고 떠올리는 순간, 공연장은 쇼핑센터나 경기장만큼이나 친숙한 여가의 선택지가 된다. 이처럼 낮아진 심리적 문턱은 자연스럽게 관객층의 저변을 넓히고 무대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응원이 된다.
창작의 다양성 지켜줄 든든한 버팀목
연출가의 눈으로 볼 때 이 제도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창작의 다양성’을 지켜준다는 데 있다. 관객의 발걸음이 극장으로 이어질수록 제작 환경은 안정되고, 이는 곧 창작자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도 괜찮다”라는 묵묵한 허락이 된다. 안정적인 객석은 흥행에만 매몰된 천편일률적인 작품이 아니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무대를 가능하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문화비 소득공제는 관객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창작자의 상상력이 마르지 않도록 지원하는 간접적인 창작 지원책인 셈이다. 창작의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는 정책적 마중물이라는 얘기다.
나아가 이 제도의 진정한 가치는 문화소비의 지평을 넓히는 데 있다. 대형공연에 집중되던 시선을 소극장의 숨소리와 지역의 작은 무대로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관객에게는 취향에 맞는 다양한 선택지를, 창작자에게는 소외되지 않는 안정적인 활동 무대를 보장한다. 예술가에게는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을, 시민에게는 삶의 질을 높이는 예술적 경험을 선물하며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징검다리가 된다.
문화비 소득공제라는 장치는 관객에게 새로운 장르와 낯선 창작자의 작품에 도전할 여유를 남기고 그 여유는 곧 건강한 공연 생태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창작자와 예술가들이 각자의 무대를 지켜나갈 수 있는 토양이 된다.
무대는 관객의 눈빛으로 완성된다
문화정책의 가치는 그것이 현장의 예술가와 시민의 삶을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연출가는 무대 위에서 세상을 그리지만 그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객석을 채우는 관객이다. 문화비 소득공제라는 마중물이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고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다시 우리 사회의 문화적 깊이를 더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오늘도 연출가는 더 낮은 문턱 너머에서 관객을 기다린다.
양정웅 예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