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6.3 지방선거와 음모론의 정치학

2026-03-10 13:00:02 게재

6.3 지방선거를 80여일 앞둔 지금, 부정선거 음모론의 망령이 또다시 여의도 정치권을 배회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주체가 변방의 선동가들이 아닌 제1야당 지도부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극우 유튜버 전한길 등이 참여한 부정선거 토론회 이후 ‘선거 시스템 재설계’를 언급하며 “당 차원의 TF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토스해주니 장 대표가 스파이크를 때린 격”이라는 전한길씨 자평처럼 공당의 대표가 음모론의 공격수로 나선 모양새다.

그 직후 “부정선거 망상에 기대는 장 대표는 보수를 좀먹는 암세포”(이동훈 개혁신당 수석대변인), “공천에서 음모론자를 우대하겠다는 신호”(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보수진영 내 비판이 잇따랐지만 정작 장 대표는 요동도 하지 않았다.

제1야당 지도부가 음모론 옹호하는 부끄러운 현실

윤석열이 내란을 획책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빌미삼기는 했지만 음모론이 이처럼 선거를 앞둔 시기에 공당의 탁상에 오른 적은 없었다. 2020년 21대 총선과 2024년 22대 총선 후 부정선거론이 보수진영 내에서 세력화 공론화됐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단호한 배격’ 또는 ‘외면’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어왔다. 장 대표가 그 금기를 깬 것이다.

지금 부정선거 음모론 추종자들과 ‘윤 어게인’ 사이에는 두터운 교집합이 형성돼 있다. 그들에게 음모론은 단순한 의혹을 넘어 ‘헌법파괴 행위에 대한 사후 면죄부’로 기능한다. 이 교집합은 논리적 설득이 불가능한 ‘정치적 종교’ 형태를 띤다. 검찰수사나 대법원판결 등 사실관계보다 ‘내가 믿는 대통령의 복권’과 ‘무너진 정의의 회복’이라는 신념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객관적 검증이 끝난 지 오래다. 대법원과 선관위는 수차례 재검표 등 검증과정을 통해 조작이 없음을 입증했다. 우리 음모론자들이 전범으로 삼는 미국에서도 2020년 대선 조작설을 유포한 폭스뉴스는 전자투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에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음모론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추종자들의 심리 속에 자리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 ‘정파적 확증편향’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인지부조화는 개인이 가진 신념과 눈앞의 사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일컫는다. 자신이 믿는 정의가 대중에게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작된 결과’라는 가상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자기 신념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정파적 확증편향’은 이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알고리즘이 선별해 주는 파편화된 정보에 갇힌 추종자들은 객관적 사실보다 구미에 맞는 음모론 서사에 더 집착한다. 이는 패배한 지지층에게 ‘도덕적 승리’라는 논리적 탈출구를 제공하며, 반대진영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한다.

문제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선거)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보이지 않는 계약은 ‘패자의 승복(Loser’s consent)’이었다. 그런데 음모론은 이 계약서를 찢어버림으로써 민주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정치를 투쟁과 증오의 전장으로 내몰아버린다. 그들은 패배하면 “부정선거”라 외치고, 승리하면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이겼다”고 주장한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결별 없는 사과는 말장난일 뿐

그러면 선거를 눈앞에 둔 민감한 시기에 제1야당 대표가 음모론에 편승하려 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패배를 전제한 출구전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질 게 뻔한 상황에서 미리 ‘시스템이 조작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서사를 선점해 책임을 면하려 하는 정치공학적 셈법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9일 긴급의총을 열고 소속 국회의원 전원 이름으로 12.3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윤석열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윤 어게인’과의 공식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물론 장 대표도 참석했다. 하지만 이것이 장동혁 지도부의 노선변화를 의미하는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장 대표의 후퇴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지방선거 후보조차 못 낼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기 때문이다.

윤 어게인과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그동안의 지원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 때 장 대표가 과연 그것을 뿌리칠 수 있을까. 진짜 윤석열과 절연하겠다면 음모론과의 결별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과와 절연은 결국 말장난일 뿐이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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