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20대 ‘탈진보화’에 대한 몇가지 시선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발견된다. 20대(19~29세)의 여권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이들은 전 연령층을 통틀어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가장 냉소적이다. 한국갤럽의 1월 4주차 데일리오피니언(1월 20~22일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44%에 지나지 않는다. 40대(76%), 50대(77%)는 물론 연령효과(age effect)로 보수지향성이 강한 70대 이상 연령층(49%)보다 낮다. 민주당 지지도도 25%로 60대의 39%, 70대 이상의 38%보다 훨씬 아래다.
이런 추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수치만 놓고 보면 20대는 반(反)이재명전선의 최선봉에 서 있는 셈이다.
숏폼의 낙인을 여과없이 소비하는 세대
한때 3040세대와 한 묶음으로 분류됐던 세대의 반진보 정서는 많이 낯설다. 탄핵광장을 K-민주주의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던 MZ세대 이미지와도 꽤 거리가 있다. 하긴 서울서부지법 폭동이나 윤 어게인 집회에 적지 않은 20대들이 얼굴을 내밀어 충격을 주기는 했다. 물론 같은 20대라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확인된다. 20대 남성이 ‘서열적 정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면, 20대 여성은 ‘공감에 기반한 연대’를 중시한다. 20대 여성이 좀 더 진보적 색채를 띠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20대 여성의 진보정권에 대한 지지도 또한 다른 연령층 여성들보다 한참 낮다.
그러면 이런 20대의 반이재명정부 성향을 ‘우경화’라는 프레임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단순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들의 반진보 정서는 변화된 매체환경과 인간의 진화심리적 본능 등이 맞물린 복합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매체환경’ 문제다. 오늘날 20대의 정치문법을 규정하는 것은 틱톡이나 릴스, 쇼츠로 대변되는 ‘숏폼(Short-form)’이다. 15초 안팎의 짧은 영상에 길들여진 세대는 긴 호흡의 맥락과 서사를 거부한다. 이들은 전후 사정을 살피기보다 편집된 영상 속의 ‘낙인’을 직관적으로 수용한다. 수잔 피스크와 셀리 테일러가 설파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모델은 오늘날 20대의 정보처리 방식을 가장 잘 설명한다.
문제는 진보진영이 거대담론에 매몰돼 있는 동안 극우·보수 인플루언서들이 숏폼 생태계를 선점했다는 점이다. 숏폼의 자극에 익숙한 20대는 그들이 쏟아내는 “대통령은 친중” “진보는 위선” 등의 낙인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소비하고 있다.
좀 더 근원적인 지점에는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가 책 ‘보수본능’에서 지적한 ‘신자유주의적 신다윈주의적 생존본능’이 작동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은 개체의 지상과제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이는 경제적 성공과 직결된다. 하지만 경제 양극화와 자산가격 폭등은 젊은 남성들에게서 경제적 성공은커녕 ‘번식(결혼)의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다. 이는 젊은 여성의 선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생존이 위급한 개체일수록 정보처리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숏폼의 자극 같은 즉각적이고 적대적인 피아 식별에 의존하는 법이다. ‘비자발적 독신자(Incel)’로 내몰린 이들의 분노는 요즘 진보가치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에게 진보진영이 말하는 ‘평등’이나 ‘사회적 배려’는 자신의 생존확률을 낮추는 ‘불합리한 역차별’일 뿐이다.
‘국민의힘 우군’이라기보다 ‘정치적 유목민’
그렇다고 이들을 ‘국민의힘의 우군’으로 보기도 어렵다. 앞의 여론조사에서 20대의 국민의힘 지지도(20%)는 민주당의 그것(25%)보다 낮다. 그런데 무당층 비율은 46%로 압도적이다. 이는 20대가 기존 정치문법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정치적 유목민’임을 의미한다. 보수진영에서는 20대의 반진보 성향이 6월 지방선거 때 투표로 표출되길 기대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오히려 20대의 정치 허무주의는 ‘투표불참’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더구나 최근 5000포인트를 넘나드는 ‘불장’이나 프로게이머 ‘페이커’에 대한 훈장 수여 등은 이들의 불만을 눅이는 ‘중립화 기제’로 작용할 듯하다. 거대담론에는 무관심하지만 자신의 문화적 자부심(페이커)과 개인적 자산(코스피 상승)에 즉각 반응하는 ‘실리주의자’인 20대 입장에서 볼 때 보수가 대안이 되지 못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굳이 ‘분노투표’에 나설 까닭이 없어서다.
정치권이 여전히 낡은 진영논리와 ‘청년팔이’ 마케팅으로 이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20대는 지금 정치적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정치라는 서사 자체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