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다이먼, 애증의 10년 종지부
월가 중재자→소송 당사자
정치와 금융의 경계 흔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의 오랜 불편한 공존이 결국 공개 충돌로 끝났다. 협력과 긴장이 교차해 온 두 사람의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JP모건과 다이먼 CEO를 상대로 5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실상 파국으로 치달았다.
블룸버그 2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JP모건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이유로 사업체 계좌를 폐쇄하고 금융 거래를 차단했다며 불법적인 ‘디뱅킹’을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이먼 CEO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금융 접근을 막았고, 다른 은행들까지 거래를 꺼리게 만들었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JP모건은 즉각 반박했다. 회사 측은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계좌를 폐쇄하지 않는다”며 “법적·규제상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에 한해 계좌를 정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다”며 법정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번 소송은 단발성 분쟁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과 다이먼 CEO 사이에 누적돼 온 갈등의 분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이먼 CEO는 그동안 월가를 대표해 백악관과 소통해 온 ‘중재자’로 불려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초반에는 기업인 자문단에 참여했고,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에는 공개적으로 힘을 실었다.
그러나 관계는 여러 차례 균열을 겪었다. 2017년 샬러츠빌 사태 이후 다이먼의 자문단이 해체됐고, 2018년에는 다이먼 CEO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고 발언했다가 논란 끝에 사과했다. 2021년 1월 의회 난입 사태 이후 JP모건이 트럼프 관련 계좌를 정리하면서 갈등은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블룸버그는 이번 소송을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 정치’ 맥락에서 해석했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티머시 오브라이언은 “다이먼 CEO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5억달러짜리 이유를 갖게 됐다”며, 그동안 신중한 균형을 유지해 온 다이먼 CEO가 공개적으로 선을 긋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오브라이언은 소송 제기 시점에 주목했다. 다이먼 CEO는 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신용카드 금리 상한 추진을 “경제적 재앙”이라고 비판했고, 유럽과의 통상 협상 방식에 대해서도 “더 공손했어야 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오브라이언은 이 같은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안이 개인 간 감정 싸움을 넘어, 대통령 권력과 금융 규제 체계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고 전했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을 감독하는 금융 규제 체계의 최상단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그 체계에 속한 은행을 상대로 거액의 민사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이먼 CEO가 최근까지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관리하며 다른 기업인들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고 전했지만, 연준 독립성 논란과 이번 소송을 계기로 그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협력보다 충성을 요구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다이먼 CEO와의 충돌이 월가 전반에 보내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정치 권력과 금융 자본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무너질 경우, 그 여파는 개별 은행을 넘어 미국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