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환경과학 이야기
햇빛 따라 꽃처럼 피고 지는 ‘살아있는 건물’
벌집 등 모방한 로봇 스웜 기술
기후적응형 건축 새 지평 제시
햇빛 강도에 따라 스스로 펴졌다 오므라지는 ‘살아있는 건물 외벽’이 현실화할 수 있을까.
2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의 논문 ‘건축 스웜: 환경에 반응하는 파사드와 창의적 표현’에서는 ‘스웜 가든’이라는 건축 스웜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SGbot이라 불리는 로봇 모듈 40개가 서로 무선 통신하며 집단 행동을 수행한다.
각 SGbot은 △가로 32.5cm △세로 32.5cm △높이 18.1cm 크기다. 얇은 플라스틱 시트가 원형 개구부를 통과하며 좌굴되는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나사봉 하나만으로 시트를 당기거나 풀면서 꽃처럼 피어나는 복잡한 3차원 변형을 만들어낸다.
메리한 알하프나위 미국 프린스턴대 기계항공공학과 연구원과 라디카 나그팔 프린스턴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논문에서 “기존 오리가미 방식 외벽은 접히는 부분마다 경첩과 복잡한 장치가 필요해 고장에 취약했지만 이번 시스템은 단순한 구조로 견고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건축 스웜은 레고 블록처럼 모듈화된 로봇들이 개미처럼 협력해서 건물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만드는 기술이다. 벌집이나 개미집처럼 자연의 군집 지능을 모방해 여러 로봇 모듈이 건물 외벽에서 협력하며 환경에 반응하는 게 특징이다. 중앙 컴퓨터 없이 각 로봇이 센서로 주변을 감지하고 이웃끼리 통신하며 스스로 조직화돼 햇빛·온도·사용자 선호에 맞춰 건물 외피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일부 로봇이 고장 나도 나머지가 보완하는 견고성과 공간별 맞춤 제어가 가능한 유연성으로 에너지 효율적이고 살아있는 듯한 적응형 건축을 구현한다.
연구팀은 3일간 16개 SGbot을 사무실 창문에 설치해 적응형 차양 실험을 진행했다. 각 로봇은 후면 조도센서로 외부 햇빛을 감지하고 이웃 로봇 및 실내 조도센서 데이터를 통합해 개폐 정도를 결정했다. 로봇들은 날씨와 무관하게 햇빛 강도에 반응했다. 햇빛이 세면 닫히고 약하면 열리는 방식으로 로봇의 차양 개폐 정도가 햇빛 강도와 96% 이상(상관계수 0.963) 연동돼 움직였다.
핵심은 ‘SG_od 모델’이라 불리는 의견 역학 기반 집단 의사결정 알고리즘이다. 각 로봇은 △자체 센서 △이웃 센서 △실내 조도센서 데이터를 가중 통합하며 실내 조도가 사용자 선호(750럭스)에서 벗어날 때만 모델이 활성화된다.
시뮬레이션 결과 △통신 두절 △자체 센서 고장 △실내 센서 고장 등 3가지 상황 모두에서 정상 작동 대비 0.83~1.00의 높은 상관계수를 유지했다. 로봇 일부가 고장이 나도 나머지 로봇들이 역할을 나눠 맡기 때문에 정상적인 작동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이는 모든 의견을 똑같이 반영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긴급 상황에선 중요한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유연한 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연구팀이 컴퓨터로 로봇 361개를 가정해 시뮬레이션 한 결과에 따르면 건물 공간마다 햇빛 양을 다르게 조절할 수 있고 해가 움직여도 밝기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대별(9시·13시·17시) 모듈 재배치로 태양 궤적에 맞춰 일정 조도를 유지하는 실험에서 조도 변화가 8.5~10.2%에 그쳤다.
물론 한계는 있다. △플라스틱 시트 내구성 문제 △실외 환경 검증 부재 △대규모 배치가 시뮬레이션에 그친 점 등 실용화를 위해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스웜이 중앙 제어 없이 자율 협력하며 건물을 환경에 맞춰 조절하는 ‘살아있는 건축’ 가능성을 실물로 입증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향후 지속가능 소재 개발과 장기 실증을 거쳐 상용화된다면 공간별 맞춤 환경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거주자 편의를 높이는 차세대 건축 기술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