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 중의원 선거 앞두고 앞다퉈 소비세 감세 공약
자민당, 2년간 한시적 식료품에 한해 0%
제1야당, 항구적으로 식료품 소비세 폐지
소수야당 “완전 폐지”… 수십조 세수 감소
다음달 8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이 소비세 감세를 들고 나왔다. 그동안 야당의 소비세 감세 또는 폐지에 부정적이었던 자민당도 한시적으로 감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규모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악화와 국채발행 급증 우려에 따른 채권시장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소비세는 현재 기본 세율이 10%이다. 다만 식료품에 한해 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까지 치솟는 등 서민생활이 고통받으면서 소비세 감세와 폐지 논쟁은 계속돼왔다.
가장 극적인 태세 전환은 자민당이다. 자민당은 지금까지 야당이 주장해 온 소비세 감세와 폐지 주장에 대해 재정악화 등을 이유로 반대해 왔다. 하지만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고 정권의 명운을 건 총선거를 예고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현행 8% 세율인 식료품에 한해 2년간 한시적으로 소비세를 0%로 하겠다고 공약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26일 열린 여야 당수 토론회에서 “세부적인 논점이 있기 때문에 (초당파적) 국민회의에서 구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가능한 빨리 시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중도개혁연합도 식료품 소비세를 항구적으로 0%로 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국민민주당은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세를 현행 10%에서 5%로 인하하겠다고 했다. 이밖에 다른 소수 야당은 대부분 소비세 완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문제는 소비세 감세에 따른 세수감소로 인한 재정 문제다. 예컨대 자민당과 중도개혁연합이 내놓은 식료품에 한정해 소비세를 없앨 경우 연간 4조8000억엔(약 45조원) 가량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다른 야당이 주장하듯 모든 소비세를 인하하거나 폐지하면 15조3000억엔(약 142조원)에서 31조4000억엔(약 292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난해 일본 정부의 일반회계 세수 총액 80조7000억엔(약 730조원) 가운데 적게는 5% 안팎에서 많게는 38% 가량의 세수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다수의 언론과 국민여론은 균형재정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7일 “(26일 토론회에서) 각 정당이 내걸고 있는 소비세 감세에 따른 재원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안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동안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하지 않고, 각종 보조금과 기업에 대한 특례감세 등의 축소 및 세외수입 확대 등으로 해결하겠다고만 했다.
노다 요시히코 중도개혁연합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재정악화 우려에 대해 “정부가 만드는 펀드를 통해 거기서 나오는 운용 수익을 재원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현실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3~25일 전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식료품 소비세 0% 공약의 효과에 대해 ‘물가대책으로 효과가 없다’는 답변이 56%에 달했다.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38%에 그쳤다.
소비세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59%로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답변(31%)보다 많았다. 일본은 각종 사회보장 관련 예산의 주된 수입원이 소비세에서 나온다. 따라서 소비세를 낮추거나 없앨 경우 세수가 크게 부족해지고, 의료와 복지 등 각종 사회보장 지원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23일 중의원을 전격 해산한 일본은 27일 선거 공고와 함께 다음달 8일 투개표를 치른다. 다카이치 총리는 해산 직전 자민-유신회 연립여당이 과반의석에서 3석 부족해 각종 예산과 법안 통과에 어려움이 있다며 중의원을 해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연립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총리직에서 내려오겠다고 사실상 공약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