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국에서 끊어진 동남아의 제조업 도약 사다리

2026-01-29 13:00:03 게재

작년 말에 방문했던 인도네시아는 석유·산림·니켈 등 자원이 풍부하고 세계 4위의 인구를 보유했음에도 제조업이 육성되지 못하여 국민소득이 정체되어 있었다.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낮은 생산비를 찾아 이동하던 제조업 이전 방식인 ‘기러기형 발전모델’이 중국 다음 순서인 인도네시아·태국·라오스 등 동남아에는 작동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베트남 정도가 중국의 후광 속에 겨우 제조업 이전 사다리에 올라탄 정도에 그쳤다.

일찍이 제조업 이전의 사다리에 올라탄 중국은 2001년 WTO 가입을 기폭제로 제조역량이 폭발하여 세계 제조업 전체 부가가치의 점유율이 2004년 8.7%에서 2023년에는 32%로 확장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동남아 등 차순위 개도국으로 제조업 이전은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제조업이 중국 내에 머무는 원인은 우선 광둥, 상하이 등 연해지역의 인건비가 오르면 동남아가 아닌 중국 내 허난성, 쓰촨성 등 중국 내륙으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내륙은 언어장벽이 없고 법적 행정적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으며 지방정부의 보조금에 더해 철도·도로 등 인프라도 갖추어져 제조업이 ‘중국 내 기러기 비행’을 하고 있다.

무력화되는 동남아의 ‘저임금 메리트’

중국이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 운용 국가가 되면서 인건비 상승을 공장자동화를 통한 생산단가 인하로 대응할 수 있는 점도 동남아를 활용할 유인을 줄이고 있다. 중국 각지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무인화 공장이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 신규 산업용 로봇의 절반 이상이 중국 내에 설치되면서 동남아의 ‘저임금 메리트’가 무력화되고 있다.

중국 내에 ‘홍색공급망’이 갖추어져 소재·부품·장비까지 국산화가 이루어진 상황도 국외 이전을 망설이게 한다. 동남아 진출 시 부품과 소재를 중국에서 조달할 때 드는 물류비와 관세를 고려하면 중국 내 생산이 더 저렴하다. 선전, 둥관 등의 제조 클러스터에 수만개의 협력사가 밀집되어 신제품 개발과 제조 효율성을 높이는 ‘네트워크 효과’ 또한 이전을 주저하게 한다.

중국의 제조대국 위상이 강화되는 반면 동남아의 제조업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석탄·광물·팜유 등 원자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의 기계 부품 등 고부가 공산품을 수입하는 무역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02년 32% 고점 이후 2023년에 18%대로 낮아졌다.

태국은 2010년 31%의 정점 이후 2023년에는 25%로 낮아졌고 말레이시아 또한 2000년 32%에서 2023년 23%대로 위축되었다. 최빈국에 속하는 라오스도 1997년 15%의 제조업 비중이 지금은 9%대로 떨어지는 등 대다수 동남아의 산업화 불씨가 꺼져가는 양상이다.

유일한 예외인 베트남은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의 생산 기지를 유치하고 미국의 대중관세 회피 물량을 받아내며 2010년 17%였던 제조업 비중을 2023년 24.4%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실상은 부품 현지화율이 낮아 중국에서 수입한 원부자재를 단순 조립하는 형태가 많다. 캄보디아 또한 제조업 비중이 26%로 늘었으나 저임금 봉제·섬유 산업에 국한되어 산업고도화로 보기 어렵다.

이처럼 동남아에서 제조업이 성숙하기 전에 위축되는 현상을 ‘조기 탈공업화(Premature Deindustrialization)’라 한다. 제조업이 창출해야 할 고부가가치와 양질의 일자리 공백을 생산성이 낮은 영세한 도소매나 숙박업, 그랩(Grab), 고젝(Gojek) 등 저숙련 플랫폼 노동과 같은 단순 서비스업이 메우고 있다. 이와 함께 팜유·석탄·니켈·천연고무 등 부존자원에 의존한 1차산품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자원의 저주’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2023년 기준 26~27%로 유지하면서 이쑤시개부터 우주정거장까지 제조업의 상·중·하류를 모두 국내에 포진한 ‘전방위적 산업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동남아 이전은 제3국을 통한 관세 회피나 인구와 자원 부국인 동남아의 현지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경우로 한정되고 있다. 그나마도 부품은 중국에서 조달하고 현지는 단순 조립만 하기에 현지의 부가가치 창출이 미미하다.

중진국 도약기회 잃어가는 냉엄한 현실

현재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자원부국이 니켈·구리 등 전략 광물의 수출금지와 같은 자원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자국 내 가공을 유도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대중 의존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중국이 ‘모든 것의 제조공장’ 지위를 고수하는 한 동남아 개도국이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