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40 대이작도 갯티길
국내 최고령 암석, 신기루같은 모래섬
대한민국 최고령 암석은 섬에 있다.
인천시 옹진군 대이작도 해변의 토날라이트 혼성암이 그것이다. 암석은 25억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
대이작도 앞 바다에는 썰물이면 떠올랐다 밀물이면 가라앉는 신기루 같은 모래섬도 있다. 풀등이다. 풀등은 동서 2.5㎞, 남북 1㎞, 50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모래 평원이다.
대이작도에는 백섬백길 91코스인 대이작도 갯티길이 있다. ‘갯티‘는 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만 드러나는 ‘조간대'(潮間帶)를 이르는 옹진 섬 지역 말이다.
갯티길은 산 능선과 해안가를 따라 대이작도를 한바퀴 돌아보는 둘레길이다. 간조 시에는 갯티를 걸어갈 수 있고 썰물 때면 ‘풀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적같은 장면을 훔쳐볼 수 있다. 갯티길 끝 지점 작은 풀안 해변에서는 최고령 암석을 친견할 수 있다.
대이작도(伊作島)의 옛 이름은 이적도(伊賊島)였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해변의 가장 큰 위협은 일본의 해적 집단인 왜구였다.
왜구는 단순한 도적이 아니었다. 지방 호족인 사무라이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통솔된 수군 집단이었다. 왜구들은 중국 해안을 비롯해 한반도 연안의 각 고을을 노략질하고 강간과 납치, 방화와 살인을 일삼으며 조정의 세곡선까지 약탈해 갔다.
조선에도 해적질을 한 자들이 있었지만 그 세력은 중국이나 일본 해적에 비해 미미했다. 중국에서는 ‘관리가 되려면 먼저 도적의 수령이 되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섬에 숨어 살던 소규모의 해적들은 포작이라 칭했다. 원래 양민들이었으나 관청의 수탈을 피해 섬에 숨어 살며 불법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가끔씩 왜구들과 결탁을 해 노략질을 하기도 했다.
나라가 키운 도적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해상 지리에 밝은 포작들을 왜군과의 전투에 활용하기도 했다. 임란 이후에는 일부 포작들이 양민으로 환원됐다.
대이작도는 면적 2.571㎢, 해안선 길이 11.8㎞. 경기만 안의 섬이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5㎞ 거리다. 대이작도 서쪽 0.2㎞ 지점에는 소이작도가, 동북쪽 1㎞ 지점에는 승봉도가 있다.
최고봉은 188m의 송이산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으나 고구려,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에 따라 소속이 바뀌곤 했다. 고려시대에는 수원에,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했으며 이후 경기도 부천군과 옹진군을 거쳐 현재는 인천시 옹진군 소속이다.
‘고려사’ 변광수전(邊光秀傳)에는 고려 말기에 왜구들이 이 섬을 점거하고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선을 약탈하던 근거지라 하여 이적(夷賊) 또는 이적(二賊)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작도가 해적 섬이 된 것은 왜구들의 거점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시대 공도 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는 말 목장으로 사용됐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남아있다.
대이작도 계남마을은 이미자의 노래로도 유명한 영화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였다. 이제는 섬마을의 많은 학교들이 사라지고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계남분교도 폐교된 지 오래다.
더 이상 순정을 다 바쳐서 총각 선생님을 사랑할 섬 처녀는 없다. 처녀들, 총각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 버린 섬마을.
외롭고 적막한 우리 섬들의 현 주소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